(안재훈·한혜진 감독)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한국의 대표 단편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했다.

김유정 작가의 `봄봄`과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 그리고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이 그 주인공이다. 작품 고유의 언어와 감성을 살려 작가가 원고지 위에 담아 내고 싶었던 얘기를 그대로 화면으로 옮기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20대의 풋풋한 사랑과 40대의 처참하고 비루한 인생, 그리고 60대의 아련한 추억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어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한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이 관람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소설 이효석, 현진건, 김유정 세 작가의 작품을 한 데 모은 이번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각 단편 소설의 특징이 그대로 그림에 표현됐다는 점이다. 서정미와 시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메밀꽃 필 무렵`은 소설의 백미로 손꼽히는 달빛 아래의 메밀꽃밭 장면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작진은 왜 소설 속 메밀꽃밭을 `눈같이 희다`가 아니라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 하다`라고 표현했는지 의아해 그 느낌을 살리고자 메밀꽃 한 송이, 한 송이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또 허생원이 물레방앗간에서 제천댁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 장면은 아련한 모습으로 표현해 더욱 감동을 자아낸다.

일제 강점기 하층민의 참담한 삶에 시선을 고정시켰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전체적으로 묵직하지만 세련된 색감과 재즈풍의 음악을 더해, 수작업으로 세밀하게 재현해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배우 장광과 류현경이 목소리 연기를 펼쳐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배가시켰다.

`운수 좋은 날` 속 `김첨지`의 경우, 계속해서 찾아오는 행운을 반기다가도, 집에 누워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운 심리와 감정을 목소리에 담아야 했었다. 또 독백과 대화를 오가는 형식의 연기까지 필요한 고난이도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문 성우 출신인 장광이 훌륭하게 김첨지의 내면을 표현해내며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김첨지`의 아내 역으로는 생애 첫 목소리 연기에 도전한 류현경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아내가 허겁지겁 조밥을 먹는 장면에서는 그 상황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 감독과 제작진까지 소름이 돋았을 정도라고 한다.

풍자와 해학의 미가 돋보이는 김유정의 `봄봄`은 1인칭 시점의 소설 전개에 맞게 판소리(도창:노래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도록 인도하는 악인)를 접목시켜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고조시킴은 물론, 김유정 작가만의 해학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시켜 관객들이 계속 귀 기울이게 만든다. 혼례를 차일 피일 미루는 장인어른 때문에 3년 반째 머슴처럼 일하고 있는 데릴사위 `나`는 자신의 처로 제격이라고 생각하는 `점순`의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해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감정을 살포시 드러내는 `점순`의 행동은 `나`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만든다.

데릴사위의 독백을 도창으로 표현해 마치 소설을 읽어주는 듯한 역할을 하는 판소리는 해금의 연주가 더해져 맛깔스럽다.

사료와 구전의 고증으로 시대적 배경과 지역적 특성을 포함하는 세밀한 묘사로 창조해 낸 영화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사랑을 받고 있는 단편 문학 세 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원작만큼 관객들에게 아주 특별한 애니메이션으로 가슴에 남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보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점이다. 이제 `명량`의 자리를 조금 양보해 이 영화를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되지 않을까?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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