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약탈하는 등의 수법으로 빼앗아간 문화재 목록을 완성해 놓고도 이를 숨겨왔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일본의 시민단체인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그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도쿄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문에서 일제에 강탈당한 우리 문화재에 관해 짐작만 해왔던 은폐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일본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은 물론 그 이후에도 우리 정부에게 속임수를 쓴 교활한 이면도 밝혀졌다.

이 시민단체가 원고가 돼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의 일본측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한 이 항소심에서 일본 정부를 대리한 오노 게이치 외무성 동북아과장이 제출한 진술서에는 "희소본으로 평가된 서적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이 이후 대일협상에서 희소본을 양도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제까지 한국에 돌려준 서적의 선정 방식에 대해 비난할 수 있다"며 목록의 비공개를 주장한 것으로 돼 있다. 한국에서 빼앗아온 희귀 서적과 문화재 목록을 공개하면 한국의 강력한 추가반환 요구가 뒤따를 테니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또한 '서적의 선정 방식'을 언급한 부분은 1965년 한일수교 당시 생색을 내며 한국에 돌려준 문화재 1431점이 실제로는 희소가치가 낮은 문화재였기 때문이다. 즉 교활한 꼼수를 부린 게 드러나면 일본 정부에 대한 비난이 뒤따를 것임을 걱정해 한 진술인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또 있다. 2012년 도쿄지방법원이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관련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수용한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일본 정부는 이 문서를 공개할 경우 한일간 신뢰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고노 담화 재검증 과정에서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한일간 외교교섭 과정을 공개한 건 일본 정부였다. 아전인수식 여론 조작을 위해 두 나라간 신뢰를 내동댕이친 건 일본이라는 말이다. 이쯤 되면 일본이 정상적 국가인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문화재 강탈의 얼개가 거의 드러난 이상 반환을 위한 재교섭 준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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