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바 일루즈 지음·김희상 옮김 돌베개·136쪽·9800원

2012년 봄, 갓 출간된 소설 한 권이 영국의 책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해리포터'를 능가하는 판매고를 올린 책의 이름은 바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완벽한 남성과 순진한 여대생의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책은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세간의 비난 속에 '엄마 포르노', '19금 로맨스'로 불리며 베스트셀러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감정사회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베스트셀러 역시 사회의 잠재의식이 투영된 결과물이라 말한다. 그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드러난 기형적 사랑의 한 형태인 '사도마조히즘' (BDSM·구속과 순종, 지배와 굴복,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뒤섞인 성생활)에 주목한다. 즉, 서로 속박하고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괴이한 성생활이 어떻게 사회적인 현상으로 부상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분석한다.

"사랑과 섹스가 처한 한심할 정도로 비참한 상태를 꼬집는 촌평인 동시에 우리 인생을 개선하기 위해 낭만적 상상력과 자기계발 지침을 하나로 묶어낸, 독특한 장르문학의 하나"로 평가했듯, 저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베스트셀러의 요소를 적절히 갖춘 책으로 평가한다. 저자는 책이 포르노에 가까운 파격적인 내용을 전형적인 연애소설에 녹여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고통을 가하는 남자 주인공 그레이와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아나스타샤의 관계 속에서 현대 남녀관계에 내재된 두려움과 불안을 읽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사랑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오늘날 남성과 여성의 만남이 시장으로 조직화되었다고 말한다. 이 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은 신분, 재력, 교양, 미모를 무기로 무한 경쟁을 벌인다. 이러한 이성간의 만남에는 만성적 불안이 자리 잡게 되고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불안정한 현대인의 애정관계의 해결책으로 사도마조히즘이 등장한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확실하게 정해진 역할과 고통, 고통의 통제와 합의를 약속하는 이러한 섹스형태를 사회가 만들어낸 관계로 분석하면서 현대인들의 사랑이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는지 진단한다. 은밀한 침실의 영역에서 사회적 함의를 읽어내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이 번득이는 대목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분명히 사랑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단지 상식에 벗어난다고 해서 이러한 사랑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철학자 헤겔의 말로 답을 대신한다. "사랑은 지성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가장 괴이한 모순이다." 성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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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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