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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최초 순교자 정신 오롯이

2014-05-01기사 편집 2014-05-01 05: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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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8 금산 진산성지

첨부사진1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기념비.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의 말 中. 2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을 결정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103위 시성식을 가진 지 30년 만에 시복식이라는 큰 경사를 눈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윤지충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비교적 잘 알려진 순교자는 아니었다. 윤지충은 소위 '진산사건'의 주인공으로서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직자 한 명 없던 박토(薄土)에 천주교의 뿌리를 내리게 한 거름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진산성지=금산 진산성지는 1791년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피의 증거자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진산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두 순교자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진산(珍算)은 본래 전라도 땅이었으나 1963년의 행정개편으로 충남도에 편입됐다.

한국 교회 초창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윤지충의 어머니 권씨는 죽음을 앞두고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해 5월, 윤지충은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정성을 다해 상례를 치렀으나 외종 사촌 형인 권상연과 함께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앙심과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집안의 신주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거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사회 안에서 패륜의 행위로 받아 들여졌다. 체포령이 떨어지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진산 관아에 나아가 자수함으로써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당한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참수에 앞서 혹독한 형벌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진산사건 이후 이 지역에는 천주교가 잠시 주춤하였으나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됐는데 지방리 공소가 그 중 하나이다. 지방리 공소는 본래 가새벌(병인박해 이전에 형성된 교우촌)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특히 1866년 병인대박해 때에는 김영삼, 1877년에는 동생인 김요한, 1878년에는 김춘삼이 가새벌에서 잡혀 순교했다. 지방리 공소는 본래 가새벌에 있었으나 1927년 교우들의 노력으로 현재 위치에 성당을 건립하고 1929년 초대 주임신부를 모셨으나, 1931년 성직자 부족으로 다시 공소가 되었다가 2009년 이곳을 진산성지·성당으로 복원했다.

◇윤지충 바오로(1759-1791년)=윤지충 바오로는 1759년 진산에 거주하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생이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윤지헌 프란치스코다. 윤지충은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해 25세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 무렵에 고종 사촌 정약용 요한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됐으며 스스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등 교회서적을 읽고, 3년 동안 교리를 받은 후에 1787년 인척인 이승훈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는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은 권상연과 함께 평소 가지고 있던 신앙심과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태워 버리게 된다. 이로 인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순교의 칼날을 받았으니, 그때가 1791년 12월 8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권상연 야고보(1751-1791년)=권상연 야고보는 1751년 진산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종 사촌 동생인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했다. 이후 권상연은 다른 학문을 접고 교리를 실천하는 데만 열중하게 된다. 그러던 중 1790년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이 내리자, 윤지충과 함께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태운다. 권상연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면서 윤지충과 함께 참수 당했으니 당시 그의 나이 41세였다.

◇진밭들 사적지=진산성지 성당에서 서쪽 2.2㎞ 인근에 위치한 진밭들(금산군 진산면 두지리)은 긴밭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박해시대에는 교우촌이 있던 곳이다. 특히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일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해 지금도 천주교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 중 1856년 9월 13일에 최양업 신부가 쓴 편지의 일부를 보면 당시 교우촌의 신자들이 어떤 고난을 겪으며 신앙을 지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루는 전라도 진밭들이라는 마을로 갔는데 그곳은 얼마 전부터 거의 마을 전체가 교리를 배우며 세례 준비중이었습니다. (중략) 제가 저녁 나절에 신자 몇 명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한 다음, 아기 세례에 이어 대세 받은 아기들에게 세례성사 보례를 집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닭이 울 때 일어나 미사를 드릴 예정을 했고, 영세 준비를 마친 어린 신도 15명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백 명이 넘는 포졸들이 마귀 대같이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성사를 거행하고 있는 집을 둘러싸더니 미사 가방과 성작 등을 빼앗아 가기 위해 제가 있는 방까지 들어오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중략) 저는 몇몇 신자들과 함께 방 안에서 있었는데 신자들의 도움으로 급히 미사 짐을 챙겨 들고, 뒤 창문으로 재빨리 빠져나와 캄캄한 밤을 이용해 산 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저와 몇몇 신자들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가시덤불 사이로 허둥지둥 이리저리 헤매었습니다." -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中. 최신웅 기자

도움말=천주교 대전교구 진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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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진산성지는 1791년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피의 증거자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진산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두 순교자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사진은 진산성당 전경. 사진=최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