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배터리 수명은 18개월 올 안풀리는 스타킹 생산 금지 제품수명 줄이는 '계획적 진부화'

 낭비사회를 넘어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정기헌 옮김 민음사·144쪽·1만2000원
낭비사회를 넘어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정기헌 옮김 민음사·144쪽·1만2000원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제품 수명 주기 정책에 따라 윈도XP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문제 없이 윈도XP를 쓰던 사람들도 보안 업데이트, 기술지원 중단으로 인해 해킹에 취약해진 윈도XP를 계속 써야 할지, 다른 운영체제를 구입해야 할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소비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판로 개척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을 팔기 위해 그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를 소비자로 만들었고 식민지 개척에도 나섰다. 그래도 소비시장이 충분치 않자 제품의 수명을 줄여 판매량을 키우기 시작했다. 윈도XP 업데이트를 멈춘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더 이상의 사용을 막으려는, 상품으로서의 생명을 끊으려는 시도다.

파리 11대학 경제학 명예교수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성장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낳은 현상중 하나로 제품의 '진부화'에 대해 조명한다. 계획적 진부화가 현대인을 낭비를 일삼는 소비자로 길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낯선 개념이지만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사례들 위주로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수요의 규모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소비 주기가 빨라져야 한다. 이것이 계획적 진부화의 기본 원리다.

진부화는 기술적 진부화, 심리적 진부화, 계획적 진부화의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기술적 진부화는 말 그대로 기술적 진보에 의해 기존의 기계와 설비, 물품이 구식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적 진부화는 광고와 유행으로 제품을 구식인 것처럼 만드는 것, 계획적 진부화는 제품에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 등을 통해 고의로 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을 말한다.

청동기와 철기가 뗀석기를 대체하고 전기 재봉틀이 발판 재봉틀을 밀어냈듯, 기술적 진부화는 인간이 돌도끼를 만들어 쓸 때부터 이뤄져 왔던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품 판매를 위해 인위적으로 시도되는 심리적 진부화와 계획적 진부화다.

1940년 듀폰사는 합성 섬유로 만든 스타킹을 출시했다. 워낙 튼튼해서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사면 반 영구적으로 신을 수 있는 스타킹에 지속적 수익을 기대하기 만무할 터. 산업논리의 압박을 받은 기술자들은 다시 올 풀리는 스타킹을 만들어 냈고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스타킹을 구매해야 한다.

제품의 수명을 마음대로 단축시키려면 독점적 시장체제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팟이다. 애초 아이팟 배터리의 수명은 18개월로 제한돼 있었고 수리는 불가능한 구조다. 이에 대해 2003년 엘리자베스 프리츠커가 애플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벌였지만 결국 합의로 논란을 매듭지었다. 독점시장 구축을 하기 어려울 땐 노골적으로 카르텔을 만들어 제품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전구 수명은 1500시간이었고 1920년대 생산된 전구수명은 2500시간이었다. 그런데 제너럴일렉트릭, 오스람, 필립스 등 전구회사들이 전구수명을 1000시간 이하로 제한하기로 담합했다. 이른바 '푀부스 카르텔'이다. 나중에 들통 나긴 했지만 벌금은 미미했고 우리가 쓰는 전구의 수명은 여전히 짧다.

소비 함으로써 과시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오래된 일이지만 그래도 절약, 검소라는 윤리적 전통은 광적인 생산과 소비를 어느 정도 제한했다. 그러나 청교도 정신의 약화와 대량생산기술, 판매촉진 기법의 발전이 만나면서 집착적인 생산, 판매, 소비의 순환이 팽창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들이 등장했고 광고는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에 부채질을 해댔다. 또 판매 보증기간, 유통기한 등을 두면서 모든 소비재의 수명에 한계를 짓기 시작했다.

계획적 진부화를 지지하는 이들의 논리도 언뜻 타당해 보인다. 이들은 제품의 수명이 길어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경제위기와 만성적인 실업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성장'과 '소비'를 계율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을 해소하려면 끊임없이 상품을 만들고 판매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진부화 주창자들은 또 제품의 수명이 길어지면 사용자들이 제품의 진보가 주는 혜택을 누릴 기회를 놓친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가 득세하면서 계획적 진부화에 대한 윤리 자체도 '진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으로도 계획적 진부화를 두둔하기엔 그것이 야기하는 현실적 재앙이 너무나 명백하다. 우리는 과잉생산을 위해 자연을 착취한다. 인간은 물건을 소비하는데 삶을 소비하고 넘쳐나는 쓰레기는 지구 한 켠에 켜켜이 쌓여간다. 매년 제 3세계 쓰레기 처리장으로 수출되는 컴퓨터가 1억 5000만 대라고 한다. 컴퓨터와 휴대폰의 중금속을 분리해내는 제3 세계 어린 아이들이 유독물질에 그대로 노출된다.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모여 바다 한 가운데 섬을 이루기도 한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탈성장 사회를 향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기술을 혐오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만들어진 욕망이라는 군불을 때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하는 소비자본주의. 전 세계적으로 뿌리내린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도 모르는 '성장을 위한 성장' 담론은 재고돼야 한다. 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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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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