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여객선의 진도 앞바다 침몰 비보를 접하며 새삼 국민으로 산다는 것을 회의한다. 애꿎은 국민들이 속절없이 희생되는 위중한 현실 앞에 자괴감이 꿈틀댄다. 특히 첨단을 구가하는 나라에서 진도참극이 실제상황이라는 사실을 목도하고는 아연해진다. 그래서인지 진도참극은 기술적, 하드웨어적 문제 이전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부조리함을 정치가 방조하고 회피한 데서 촉발된 건 아닐까에 생각이 미친다.

마침내 문제는 정치라는 심증을 굳힌다. 정치야말로 이번 재앙의 미필적 고의범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말한다. 정치는 시민민주사회를 지탱하는 단단한 외피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왜 그런가는 금세 이해가 가능하다. 근대 민주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은 자신의 재산권 행복권 생명권 등 기본권적 이익을 담보하기 위해 정치와 계약을 맺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근로의 의무를 지는 등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신, 국민을 대리해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도 마땅히 그에 상응해야 한다.

정치는 그러나 언젠가부터 국민을 위하는 일에 해태해왔다. 국민을 위하는 척 귀 간지러운 소리만 그때 그때 내뱉곤 했다. 표 찍어주고 지지해주면 일상의 안전망, 권리로서의 먹고사는 민생을 알아서 담당해줄 것으로 믿었다. 배타고 가는 수학여행 사고를 걱정하는 일은 기우라 여겨왔다. 그게 패착이었음을 생생하게 증명한 단적인 사례가 안타깝게도 진도참극이었다. 지금 국민적 법감정은 정치를 국민법정에 세워 징치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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