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은행나무·303쪽·1만4000원

삶의 이정표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곤 한다. 소설 '7년의 밤'과 '28'로 문학계에 돌풍을 일으킨 작가 정유정. 진짜 이야기꾼으로 불리길 바라며 세상을 향해 질주해온 그녀도 '28'을 탈고한 후 스스로를 추동할 엔진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끼고는 여행길에 오른다. 다만 이 여행이 특별했던 건, 한 번도 대한민국을 떠나본 적이 없었고 타고난 '골방체질'이었다던 그녀가 선택했던 곳이 대담하게도 안나푸르나였다는 것. 안나푸르나는 6년 전에 쓴 소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떠난 신들의 땅이었다.

스스로도 "엄홍길 대장이라든가, 오은선 대장이라든가" 대장들만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곳이지만 네팔정부가 다양한 트레킹코스를 개발해둔 덕에 "졸개들에게도 히말라야로 입성하는 길이 열려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선택한 '환상종주(Circuit)'는 약 18일이 걸리는 코스로 안나푸르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며 해발 5416m의 쏘롱라패스(Thorung La Pass)를 통과하는 미션이 포함됐다. 일반인도 갈 수 있는 코스지만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고산병 등으로 고생할 수 있는 코스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 맞설 용기를 찾기 위해 안나푸르나로 떠난다.

짐을 챙기는 일부터 서툴기 그지없는 여행초보자의 모험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네팔 음식의 향을 못 견뎌 야채볶음밥으로 세끼를 때우고 수일간 '볼 일'을 못보고 속병을 앓는다. 3000m 고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택배전화'에 깜짝 놀란 이야기부터 꼬질꼬질한 면상에 차마 '코리안'이라고 밝히지 못했던 일까지 작가는 소소한 에피소드에 입담을 불어넣는다.

방황 같은 종주를 계속하는 동안 작가는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과거의 기억들과도 조우한다. 어린시절의 추억, 자신을 강하게 키웠던 어머니,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순간, 소설의 한 토막으로 '요긴하게 써 먹은' 광주 항쟁당시 경험담까지. 그녀가 풀어놓는 기억들은 마치 여러 편의 액자소설을 보는 것 같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리고 책이 출간된 걸로 보아 당연히)그녀는 종주에 성공했다. 단순한 슬럼프를 넘어 "욕망이라는 엔진이 꺼져버린"채 "이야기 속 세계, 나의 세상, 생의 목적지로 돌진하던 싸움꾼이 사라진 것"같던 극단적인 무기력과 허무에 관한 답도 얻은 것 같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히말라야의 사진과 이야기들, 고생담을 잘 포장한 작가의 재치 덕분에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여행기다. 최정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정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