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2 서산 해미 순교성지

해미 순교탑.   사진=서산시 제공
해미 순교탑. 사진=서산시 제공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 순교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정사박해(1797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수천 명이 넘는 무명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서산은 천주교인들이 가장 혹독하게 탄압을 받았던 지역 중 하나다. 당시 서산과 당진, 홍성, 예산 등 충남 내포(內浦)지방은 서구 문물의 유입이 활발해 초창기부터 천주교가 유포되며 많은 신자가 있었다. 이 때 충청도 각지에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해미읍성에 갇혔다.

해미읍성은 원래 조선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위치했던 군사적 중심지였다. 해안지방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이 성은 1651년 청주로 병마절도사영이 옮겨가기 전까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이순신 장군이 군관(軍官)으로 열달 정도 근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미읍성은 천주교인을 박해하는 학살의 현장으로 변하게 된다. 해미읍성 감옥에는 내포지방 곳곳에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손발과 머리가 묶인 채 감옥 앞에 있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충청도지역 사투리로 `호야나무` 라 불리는 이 나무에는 순교자들을 매달았던 흔적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감옥에 갇힌 신도들은 매일 읍성 밖으로 끌려 나와 교수형, 참수, 사약, 몰매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처형당했다.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행해지기도 했고, 여러 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기 힘들자 읍성 밖 해미천 옆에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 아무데나 땅을 파고 구덩이에 산 채로 사람을 집어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 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날마다 되풀이됐다.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까지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인언민, 이보현 등 3명만이 시복시성(諡福諡聖)됐다.

생매장당할 때 신자들이 예수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들은 백성들이 이곳을 `여숫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연못에 수장한 신자도 적지 않았다. 그 연못은 `진둠벙`이라고 불렸다. `진`은 `죄인`이 줄어 변한 말이고, `둠벙`은 `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신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서문 밖 순교지에는 1956년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 원위치를 찾아 보존되다 2009년 1월 여숫골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1935년 서산 본당의 범 베드로 신부는 순교자 유해 일부와 유품 등을 발굴했고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 1995년 유해 발굴터인 원위치에 안장되었다. 순교자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되어 보존되고 있다. 1975년에는 유해 발굴지 인근에 높이 16m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 순교탑이 세워졌다.

1985년 해미 본당이 창설된 후 순교 성지 확보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 1998년 생매장 순교 성지 약 2만3100㎡(7000평 )확보했다. 이어 1999년부터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아 2003년 기념 성전을 건립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생매장 순교지 일대는 주민들의 입으로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땅이 되어 전국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편 조선시대 읍성(邑城)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평가받는 해미읍성은 성 둘레가 1.5㎞에 달하며, 진남문과 동문, 서문이 설치돼 있다. 성 안에는 민속가옥, 국궁체험장, 천주교 신도들을 가뒀던 옥사(獄舍), 조선시대 관아인 동헌 등이 있다, 매년 10월경 열리는 서산 해미읍성역사체험축제에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성 안에서 순교의 아픔을 느끼고 선조들의 생활상을 체험한다.

`아시아 청년대회`참석을 위해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중 서산 해미 순교성지를 찾아 순교자의 넋을 위로하고 아시아 청년들을 위한 기도를 할 예정이다.

교황은 8월 17일 오전 해미 한서대학교에서 열리는 아시아 주교회의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이번 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폐막미사를 해미읍성에서 집전할 예정이다. 교황의 폐막미사는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된다. 교황의 방문에 앞서 16일에는 해미 한서대학교에서 해미읍성까지 도보순례가, 오후에는 해미읍성에서 한류문화체험을 위한 순례 페스티벌이 열린다.

교황의 방문 소식에 벌써부터 이 곳 주민들은 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고, 해미읍성과 해미성지에는 순례객의 발길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충남도와 서산시는 교황의 방문이 공식 확정됨에 따라 전담팀을 꾸려 지원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등 대회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서산=정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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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 순교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정사박해(1797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사진은 해미 순교성지 전경.  사진=서산시 제공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 순교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정사박해(1797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사진은 해미 순교성지 전경. 사진=서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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