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모두 5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1805년에서 1806년 사이에 작곡된 이 4번은 그중 가장 시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의 협주곡이다. 일반 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곡이 협주곡 제5번 '황제'라면 전문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곡은 아마 이 4번이 아닐까 한다. 이 곡은 1808년 비엔나에서 베토벤 자신의 연주로 초연되었는데 그 초연날에는 이 곡뿐 아니라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 6번 '전원' 또 합창환상곡 등도 같이 연주되었다 하니 장장 4시간에 걸친 그야말로 마라톤 형식의 연주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연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오케스트라는 리허설이 부족해서 충분이 연습되지 않았고 솔리스트는 아마추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청중들의 냉담한 반응만을 얻었다.

당시에는 기악 협주곡이라 하면 오케스트라가 먼저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솔로 파트가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 4번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 독주로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오케스트라가 들어오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술적으로도 당시 연주 기량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1악장 처음에 서정적이고 온화한 주제를 피아노가 연주하면 오케스트라가 이를 반복하고 중간 부분에서 음악이 발전해 나가면서 피아노와 교향악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어우러져서 다채로운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절대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독주자의 화려한 기교를 강조하는 방식의 협주곡에 익숙해 있는 청중에게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지루한 음악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1악장은 그 길이가 20여 분이나 되는 긴 길이를 가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짧은 2, 3악장은 이어져서 연주되게 되어 있어서 그 음악적 맥락을 한 번 잃고 나면 다시 집중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부터 사라진 듯싶었던 이 작품은 1836년 멘델스존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시 이 곡을 적극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것에 의해 그 음악적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떤 곡은 처음 몇 번은 아주 좋다가 자꾸 반복해서 듣다 보면 금방 지루해지곤 하는데 이 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 숨겨진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오래 끓인 진국 같은 곡이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