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셰퍼드 등 혐오범죄 희생양 성소수자 14명 이야기

 무지개 깃발은 동성애자와 동성애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표식으로 오늘날 다양성의 상징이 되었다. 게이퍼레이드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무지개 깃발은 동성애자와 동성애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표식으로 오늘날 다양성의 상징이 되었다. 게이퍼레이드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서른두 살 여성 탈라나 콰이 크리거는 창자가 뽑힌 채 숲속에서 숨졌다. 스물다섯 살의 온화한 청년이던 라이언 키스 스키퍼는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의 조카와 그의 친구가 찌른 칼에 맞아 죽었다. 갓 성인이 된 찰스 O. '찰리' 하워드는 10대 소년들에게 들려져 다리 아래 차가운 강물에 던져졌다. 이토록 잔인하고 야만적인 살인이 발생한 건 그들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고 친구이자 동료이며 타인에게 그 어떤 피해도 준적 없었던 그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존재가 부정(不定)됐다.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는 동성애나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다가 혐오범죄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14명의 이야기다. 저자인 스티븐 V. 스프링클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또한 커밍아웃한 이후 혐오범죄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의 집과 승용차가 훼손되고 유일한 동반자였던 애완견 두 마리는 도살되어 정원 나무에 매달렸다. 그는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이 책에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마녀사냥, 노예사냥, 여성차별, 홀로코스트 등 비합리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역사들이 사실은 크나큰 오류였음을 우리 모두 안다.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 또한 이 시대의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임이 언젠간 입증될 것이다. 그래서 희생당한 성소수자들의 일생을 돌아보며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돕는다.

성소수자에게 가해진 범죄가 세상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데 반해 매튜 셰퍼드 살해사건은 미디어의 집중조명을 받고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1998년 10월 7일 늦은 밤 아론 제임스 매키니와 러셀 아서 핸더슨은 스물한 살의 대학생이었던 매튜를 납치해 권총으로 머리를 거듭 내려친 후 외딴 산등성이의 사슴울타리에 그를 묶어 방치했다.

"헝클어진 금발, 순진함이란 말이 딱 들어맞아 보이는 푸른 눈, 수줍게 갈라진 입술 밑으로 희미하게 드러난 치열 교정기 자국은 어떤 사람에게는 에로틱하게 유혹적이었고,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의 완벽한 어린 아들이자 형제의 모습이었다."

매튜 살해사건은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잔학한 폭력의 실체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후 희생자가 매튜와 비슷하지 않으면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그러나 성소수자 혐오범죄는 대상, 발생 시기, 살해 방법 등에서 천차만별이며 잘 알려지지 않지만 최근에도 발생한다.

성소수자들에게 폭력을 가한 범죄자들은 법정에서 '게이 패닉(gay panic, 게이를 만나서 일어난 공황)'으로 인한 정당방위 논리를 들이민다. 특히 남성 사이에서의 범죄의 경우, 폭력을 가한 사람이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모욕'이 자신의 '이성'을 뒤흔들어 놨다고 주장한다. 살인범들이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려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는 종교적 근본주의에서 비롯한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를 '불경한 것'으로 여긴다. 한국에서도 동성애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에 기독교인들이 제동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폭력은 용납될 수 없으며 그들을 억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길을 걷는 것, 친구를 사귀는 것, 그냥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수많은 위협과 고통속에 살다간 이들의 죽음이 비극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비극을 끝내기 위한 절실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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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스티븐 스프링클 지음·알마·552쪽·1만9800원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스티븐 스프링클 지음·알마·552쪽·1만9800원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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