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까지 21일

영화는 지구가 소행성과의 충돌로 21일 후에 멸망하게 될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전기와 전화 모두 끊긴 절망적인 상황. 아내마저 도망가고 마땅히 갈 곳 도 없는 외로운 남자 도지(스티브 카렐)는 3년 만에 옆집에 사는 페니(키라 나이틀리)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페니는 그 동안 자신에게 잘못 배달됐던 우편물을 도지에게 건네고 그 우편물 속에서 첫사랑 올리비아의 편지를 확인한 도지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방황 속에 보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이제 종말은 2주 앞으로 다가오고, 폭동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집을 빠져 나오게 된 도지는 문득 첫사랑을 찾기로 결심하게 되고 수면과다증으로 잠에 빠진 이웃집 페니를 구한 채 함께 여행길에 오르면서 종말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장면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폭동이 일어나 집을 버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페니가 다른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 가장 아끼는 LP판을 챙기는 장면이다. 이건 감독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으로 그만큼 이 영화에서 배경음악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도지가 결국 첫사랑 올리비아 집에 도착한 후, 올리비아를 만나지 않은 채 조용히 편지만 남기고 오는 장면이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었지만 이미 어긋나버린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채 남은 현실에 충실하려고 하는 도지의 모습 속에 이 영화의 주제가 오롯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종말을 앞둔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묵시록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끝이라는 상황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소소한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삶이 21일 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순간에도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꿈꾸기만 할 것인가? 최신웅 기자

취재협조 = 대전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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