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사장

'씨×'이건, '에이 씨'건 그게 그거다. '야', '너', '못된 놈' 진위 논란도 다를 바 없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 의혹 등을 파헤치겠다고 문을 연 국정조사 특위장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몸싸움과 날치기는 찾기 힘드나 비방은 갈수록 극성이다. 본질은 사라지고 언어 폭력만 춤추는 모양새다. 진실 규명은 간 곳 없고, 저질 막말 공세가 점입가경이다. 여의도의 폭언 수은주가 한여름 폭염을 넘어섰다.

'귀태'(鬼胎) 발언으로 정당의 입인 원내대변인이 물러난 게 엊그제다.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특위에서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히틀러의 유태인 집단학살'에 비유했다. '사기꾼 집단', '사기꾼 괴수'라는 표현도 나왔다. 일국의 야당 대표와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은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라고 지칭한 일도 있었다. 오기와 증오, 저주의 언어다. '경제를 죽인 노가리', '새해 소원은 뭔가요, 명박급사' 보다 나아진 게 아니냐고 위안이라도 삼아야 하나.

의회정치가 뿌리내린 선진국에도 정치인들의 막말은 있다. 말싸움으로 따지자면 우리보다 훨씬 독하다. 다른 게 있다면 최소한의 룰이 있다는 점이다. 선을 넘으면 자체 징계는 기본이고 유권자의 혹독한 심판을 받는다. 영국 의회에서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기 전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한다. "존경하는 의원님께서 내가 낸 세금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으셨는지 의심스럽다"고 비꼬는 식이다.

막말을 받아치는 유머 감각은 정치의 격을 높여준다. 링컨이 미 상원의원 후보자리를 두고 대결할 때다.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는 상대의 공격을 한번에 제압했다. "여러분께 판단을 맡깁니다. 만일 제게 또 다른 (잘생긴) 얼굴이 있다면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73세인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 도전 때 일이다. 그는 56세인 먼데일 전 부통령이 고령을 트집 잡자 "나는 후보의 나이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고 응수했다. "먼데일의 '젊음'과 '무경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유머 하나로 상황은 끝났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밥 돌 전 상원의원이 대통령 순위를 매기면서 기준으로 삼은 게 유머감각이다. 그에 따르면 미 대통령 중 링컨이 1위, 레이건이 3위였다. 유머는 정치인에게 고도의 정치 기술이다. 정적의 공격을 재치있게 받아쳐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는 마력이 있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유머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보다 개방적이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준다. 지적 소양이나 영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게 유머다. 순발력과 기지로 위기를 부드럽게 넘기는 모습에서 유권자는 통쾌함을 넘어 그 정치인의 '내공'을 본다. 유머는 국민과 소통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입에 담기 힘든 막말을 달고 사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이런 유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유머가 안된다면 언행이라도 고쳐야 한다. 말은 단순히 의사 소통의 도구 이상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정치인들이 저질 언행을 일삼으면 국격(國格)이 손상되는 이유다. 공자는 '논어'에서 언행이 덕성 함양의 방법이며 길함과 흉함, 영광과 오욕이 말을 따라온다고 했다. '법구경'에서도 말을 경계했다. 입안에 도끼를 간직하고 나와서는 제 몸을 찍게 되니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뱉은 악한 말 때문이라는 경구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원 개개인의 인식 전환이 아쉽다. 상소리는 의원 스스로의 품위부터 떨어뜨린다. 손가락질 할 때 다섯 손가락 중 세 개가 자신을 향하는 이치다. 말싸움에 매몰되면 민생은 뒷전에 밀리고 만다. 끊이지 않는 저질 폭언 행진이 '국회의원 막말 금지 법안' 입법화로 고쳐질지 의문이다. 의원 서로가 서로를 욕하면서 닮은 꼴이 된 상황이다. 마음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그 말이 산만하고, 조급한 사람은 말이 많다고 한다. 위선자는 그 말이 뜨고, 지조를 잃은 사람은 그 말이 비굴하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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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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