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슈퍼 갑(甲)'이다. 무모하고 맹목적이다. 목적이 옳다면 무리하고 전제(專制)를 해도 무방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나 부작용이 발생하건 안중에 없다. 망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대기업의 얘기가 아니다. 중앙정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보다 양육강식이 더 심한 자본주의 나라 한국에서 대기업들이 그나마 겁먹거나 겁먹은 체하는 유일한 존재가 '정부'다. 새 정부 들어 CJ그룹과 롯데가 사정권 안이 들어선 것처럼 비쳐지자 대기업들도 잔뜩 움츠린 채 정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엊그제 시도지사들이 서울에서 모여 취득세율 인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세금 인하를 마다할 국민이 없지만 이러다가는 지방 살림살이가 망한다는 것이다.

시도지사가 누구인가! 대통령도 마음대로 못한다. 선거로 임기 4년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대개 2-3회 연임을 한다. 5년짜리 대통령이 뭐라 해도 버틸 수 있는 배경이다. 국회의원 중에도 시도지사를 하려는 사람이 꽤 있다. 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홍준표 의원이 경남지사를 하고 있다.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사태를 두고 국회와 맞장을 뜨고 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가장 힘이 세다는 국회 전체(여야 불문)와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그처럼 힘이 센 시도지사가 모여 정부에 취득세를 내리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혼자 얘기해봐야 중앙정부가 거들떠도 안보기 때문이다. 지방세의 근간인 주택 취득세를 영구적으로 내리면 지방 살림이 거덜난다고 하소연했다.

옳은 얘기다. 취득세는 연 14조1000억 원(2011년 기준)으로 지방세 총액의 26.5%를 차지한다. 세종시의 경우 올 상반기 지방세 총액 1082억 원 중 52%인 559억 원이 취득세다. 지방에서는 아파트나 주택을 구입하고 내는 취득세 비중이 절대적이다.

중앙정부는 시·도의 의견이나 입장은 한마디도 들어보지 않고 주택 취득세 인하를 발표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껄끄러워하는 시도지사를 철저히 묵살했다. 진정한 '슈퍼 갑'다운 독단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란다.

정부 뜻대로 취득세 영구인하가 경기를 살려낼지는 미지수다. 그보다는 우선 당장 아파트 거래가 실종될 것이다. 집을 살 사람은 누구나 취득세가 내릴 때까지 기다릴 게 뻔하다. 이 제도가 실시된다 해도 일시적으로 거래가 증가하겠지만 얼마 안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고착될 것이다. 요즘은 아파트가 그저 '집'일 뿐이다. 거주공간이지 투자나 돈벌이 수단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팔고 사기를 반복하여 집값이 올라가는 시대가 지났다는 얘기다. 정부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여 경기를 살리고 국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는 무너질 버블이고 신기루일 뿐이다. 다소 모호하지만 '창조경제' 쪽으로 가는 것보다도 못한 일이다.

지방정부는 지난해 전격 실시된 무상보육 때문에도 곪아 왔다.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내놓은 '무상보육'을 중앙정부가 덜컥 받아들여 지방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생색은 정치권과 중앙정부가 내고 지방은 보육비의 50%를 대느라 허리가 휘었다.

중앙정부가 지난해 '무상보육'에 이어 올해 '취득세 인하'라는 역작을 거푸 내놓았다. 지방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섣부르고 덜 익은 졸속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기도 전에 내질러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도 나온다. 지방정부의 세수 부족을 채울 대안도 없다고 비판한다.

온갖 우려와 비판을 무릅쓰고 꿋꿋하게 일로매진하는 중앙정부가 자랑스럽다. 이 땅의 진정한 '슈퍼 갑'이다. 지방 위에 중앙 있고, 국민 위에 정부 있다. 중소기업 위에 대기업 있고 그 위에 정부 있다. '갑'에게는 국민도 없고 지방은 더더욱 없다.

취득세 인하는 현오석 경제팀이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다. 신중하기로 이름난 현 부총리체제가 내놓은 정책치고는 의외고 우악스럽다. 박근혜 대통령 5년 우리 경제가 어디로 갈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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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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