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문화예술인들도 이념적 지표나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는 것을 본다. 그들도 사회적 동물이니 너무도 당연하다. 시인이라고 하여 시만 쓰고 있으라는 법은 없다. 시도 쓰고 정치도 할 수 있다. 시인이 아니면 정치에 입문도 하지 못했던 시대도 있었다. 인간 안도현은 시인이다. 그도 인간이기에 정치를 할 수도 있다. 시인 안도현이 정치를 한다고 하여 비난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시를 안 쓰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가 시를 쓰고 안 쓰고는 그의 자유다. 그런데 시를 안 쓰겠다는 이유가 가관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안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 같은 시인 하나 시 안 써도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안씨가 시 안 쓰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설마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시 창작활동을 금지라도 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런데 왜 시 안 쓰는 핑계를 박근혜 대통령에다가 갖다 대었을까? 어쩌면 정치를 하기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었을까? 정치개업 선언을 그런 식으로 한 것이라 여겨진다. 정치개업 선언치고는 매우 치졸하다. 시인 등단도 그런 식으로 했을까?

시인 안도현이 어느 날 갑자기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대선후보인 문재인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제 당인(黨人)이 된 것이다. 그러자 그는 언제 시인이었더냐는 듯이 "연탄재"보다도 더 험한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뻘짓 그만하시오", "개콘(개그콘서트)보다 못한 찌질이", "박근혜나 이명박 따위가 대통령인 나라" 등과 같이 말이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악담이나 허위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도난문화재로 등록된 안중근 의사 유묵을 갖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본 적도 없다고 잡아떼실 건가요?", "국가에 돌려줄 생각은 없나요?", "그녀, 잘 가꾼 악의 얼굴이여", "연민을 자극하는 상처 마케팅"과 같은 비방의 글을 십수 차례나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이로 하여 그는 허위 비방죄로 기소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작가 공지영 씨가 나섰다. "박정희 전두환 때에도 시를 썼던 안도현 그때도 검찰에는 끌려가지 않았다. 이제 검찰을 다녀온 시인의 시를 잃게 되었다. 너무 아프다"고 하면서 말이다. 마치 안씨가 정권의 탄압으로 검찰에 불려 다닌다는 것처럼 분위기를 띄운 것이다. 참 웃기는 얘기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무슨 특권인가? 시인도 죄 지으면 법대로 처벌받는 것이다.

안씨가 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고 있을 때에 동료 시인 도종환을 비례대표로 추천하였단다. 그때 도종환은 "그럼 시는 누가 쓰느냐"고 했다던가! 그랬더니 안씨가 "시는 내가 쓸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대단한 의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더 이상 시를 안 쓰겠다니! 누가 그를 보고 계속 시를 쓰라고 했던가?

필자는 인간 안도현이 시를 쓰건 안 쓰건 관심이 없다. 다만 시인이 마치 특권인 양 행세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너무 역겹다. 시인의 시심(詩心)으로 살벌한 정치판에 조금이라도 청량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하여 여간 씁쓸한 기분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기자와의 통화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일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정부를 바라보는 심경은 '참담' 그 자체"라고도 말했다. 과연 그럴까? 병이 들어도 한참 든 모습이다. 정치병 말이다.

민족 시인이라고도 할 지훈은 일찍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시인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시인과 조신(操身)'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다. "그들이 본디 항간의 엉터리 정상배(政商輩)들이 아니고 혼탁한 사회에 국민들이 그래도 일루의 기대를 걸었던 지각 있어야 할 문필인이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쓴 글이다. 필자 또한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정치병에 걸려 허덕이는 한 시인의 질병을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별처럼 살아 있을 때 시인이다. '시인이 병들면' 이미 시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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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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