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새누리당이 4일 오전 대전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 예정이다. 대전시민들에게는 느닷없는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이 회의는 대전 대덕특구 안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리며,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이 참석한다고 한다. 대전시당 위원장인 이장우 의원과 대전시장을 지낸 박성효 의원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회의를 마친 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핵심인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설 예정인 대전 둔곡·신동 지구를 둘러볼 계획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회의를 '현장'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 '현장 최고위원회의'라고 부르면서, '창조경제의 현장이랄 수 있는 ETRI에서 창조경제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성공적인 과학벨트 조성을 위해서'라고 대전 개최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지방에서 여는 새누리당의 현장 최고위원회의는 올해 대전이 처음이 아니라 부산·인천에 이어 세 번째란다. 이쯤 듣다 보면 이해되긴 하지만 서울 중앙당이나 국회에서만 열리는 줄로만 알고 있던 최고위원회의를 왜 대전에서 여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전날인 3일 오후 대전시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체결한 '과학벨트 수정안 업무협약'에 있다. 불과 하루 뒤에 대전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는 이에 대한 지원사격쯤으로 볼 수 있겠다. 좀더 확대해석하자면 과학벨트 수정안이 대세(大勢)로 자리 잡도록 쐐기를 박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이런 의도의 종착점은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가 닿는다. 과학벨트가 주요 쟁점이 될게 뻔한 내년 대전시장 선거에서 과학벨트 수정안이 당연한 것,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라는 인식이 대전지역에서 보편화되지 않는다면 안심할 수 없다는 셈법 때문인 듯하다. 더욱이 야당인 민주당은 과학벨트 수정안에 대해 정교하진 않지만 날을 세운 공격을 퍼붓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전은 7년 전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테러를 당하고서도 "대전은요?"라고 물은 곳이 아닌가.

그때 "대전은요?"라는 질문의 반대편에 있던 염홍철 대전시장은 미래부와의 이번 협약 체결로 내년 선거 가도에서 마주칠 여러 고비 중 첫 번째 고비의 8부 능선쯤 올랐다고 여기지 않을까. 갑이 아닌 을의 처지에서, 과학벨트 수정안이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인식과 여론이 퍼져나가야만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고 판단할 것이다. 염 시장으로선 과학벨트 수정안을 걷어차버릴 수는 없었을 듯하다. 선거구도상 다른 출마예상자들의 추격을 멀리 따돌려야 하는 처지에서 어찌됐든 대전에 득이 되는 성과를 냈음을 보여줘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탓이다.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은 건지 아닌지는 이후 대전지역 여론의 향배가 좌우할 것이다.

과학벨트 수정안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거나 반발하는 다수의 대전시민들은, 과학벨트 원안추진을 위해 지역정가의 여야가 힘을 모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과 활동에 이미 돌입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면공개 합의 등에서 보듯이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전면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정가의 여야는 이런 정치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년 선거와 여의도의 정세를 무시하고 손을 잡는다는 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행동이다. 대전시민들에게는 이런 정국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지역여론이 간과하는 건 또 있다. 과학벨트 사업은 50개 사업단 설립이 현재 목표인데, 이 가운데 대전에 세울 15개 사업단 중 2개만이 설립돼 있고 그나마 하나는 들어갈 공간이 없어 서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세들어 있다. 현재 10여개 사업단 설립을 목표로 4차 공모가 진행중이지만, 세계적(월드 클래스)인 과학자가 대상이어서 대전·충남지역 대학들은 꿈도 못꾼다고 한다. 반면 서울의 명문 대학들은 해외 저명 과학자를 스카웃하는 방식으로 구색을 맞춰 이번 공모에 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학벨트 사업의 거점지구인 대전이 잃어버리는 것은 엑스포과학공원만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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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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