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 @daejonilbo.com

해외여행 중 필수 코스가 박물관·미술관이다. 두 곳을 제외한 해외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 격이다. 박물관은 한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풍습을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인문학적 견문을 넓히는 최적의 공간도 된다. 박물관이 해외여행 스케줄의 필수 코스인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누구나 교과서 등에서 본 낯익은 그림을 미술관에서 발견했을 때 눈이 번쩍하는 충격을 경험했을 것이다. 진품을 접하는 희열감에 가슴 뿌듯한 묘한 감정도 솟구친다. 하지만 다른 낯선 그림으로 눈을 옮기면 금새 피로감을 호소한다. 그림 낯 가림이 심해지면 작품을 외면하고, 이 단계를 넘어서면 자리를 피하고 싶어한다. 루브르·대영박물관 등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도 다를 게 없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본 바다.

미술 기피증이 도진 것이다. 우라질 그놈의 미술 기피증은 미술을 좀 안다는 사람도 어쩌질 못한다. 괜히 무식이 들통 날까봐 모른 척할 뿐이다. 그러니 기피증 때문에 미술관 가기를 꺼리거나 미술관에 걸린 작품에 주눅이 들 필요가 전혀 없다. 미술관을 입장객 상당수는 미술지식 수준이 피장파장이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도토리 키재기다. 그러니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눈길 가는 대로 관심있는 그림을 골라 보면 되는 것이다. 외국 여행중 짧은 영어에 쉬운 단어와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하다 보면 눈치코치 9단쯤 되고 점차 자신감이 생기듯 미술 감상도 그렇게 하면 된다.

현대미술은 다 어렵다고 한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을 게 현대미술이라지 않는가. 어려운 만큼 배우고 익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적어도 교양인이 되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미술입문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 대안이 좌우충돌, 닥치는 대로 보는 것이다. 미술은 본래 인간의 본질적 감정, 즉 회로애락을 기호로 표시한 것이다. 언필칭 동·서양의 미술언어가 오십보 백보라는 얘기다. 몸짓 예술인 춤처럼 미술도 그렇게 접근하면 된다. 싸이의 말춤처럼 즐기면 된다. 보고 또 보면 친숙해 지기 마련이다. 이게 초보자 미술감상의 왕도다.

미술감상의 왕도를 체험할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오는 18일부터 두 달 넘게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미국미술 300년 전이다. 미국역사 300년을 아우르는 그림과 도자기·예술적 가치를 지닌 가구와 장신구까지 미국 문화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전시다. 휴스턴 미술관 등 미국 3개 미술관이 소장한 컬렉션이란 점도 흥미를 자극한다. 전시관을 채울 160여 점의 작품은 각각의 미술관에서 엄선한 대표작이다. 눈 호사를 누릴 모처럼 기회다.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의 작품도 있다. 토속미 짙은 인디언 미술, 우리 근대미술과 흡사한 인상주의 풍의 미국 초기 미술, 서부 개척시대 생활상이 오롯이 담겨 있는 미국적 풍속화까지 미국 문화의 다양한 스팩트럼을 엿볼 수 있다. 미국 미술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뜻이다.

미국미술이 우리에게 다소 낯선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럽미술만 편식한 탓이다. 어렵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괜한 걱정이다. 너무도 친숙한 팝아트의 거장 워홀과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폴록이 있지 않은가. 낯 익은 두 작가의 작품이 관람객을 친절하게 미국미술 속으로 안내할 것이다. 미국 개척기부터 현재까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작품들을 즐기면 될 일이다. 편하게 감상하다 보면 안목이 트이고 그림이 주는 묘한 매력에 저절로 빠진다. 궁금한 점은 도슨트에게 묻고 리플릿을 참고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술지식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얼마전만 해도 웬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치고 경영·행정대학원에 다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의 상당 부분이 철학이고, 미술이 철학과 호형호제쯤 된다면 외면만 할 대상은 결코 아니다. 친해질수록 마음의 양식이 쌓이고 교양 높아지는 것은 미술과 인문학이 별반 다를 게 없다. 이게 미국미술 300년이 전하는 메시지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