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 저자 경제지표·개인 삶의 질 괴리 분석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이원재 지음·한겨레출판·264쪽·1만3000원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이원재 지음·한겨레출판·264쪽·1만3000원
어느 날 저녁 저자는 20년 전 자신이 살던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영어학원이 입주한 빌딩이, 아침마다 사먹던 두부를 만들던 공장자리에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3개였던 문방구는 하나로 줄어있었다. 그런데 어릴 적 자주 들르던 동네 서점이 20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닌가. 서점 안에는 책을 좋아하던 주인아저씨가 한결같이 자리에 서 있었다.

저자는 오랫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동네 서점을 운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네, 같은 자리에서 평생 서점을 운영하는 분을 이상하게 여기게 만들다니, 정말 이상한 사회가 아닌가."

한국경제의 외형은 세계가 놀랄 만큼 급성장했지만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삶의 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거나 더 나빠졌단 사실은 이제 슬픈 상식이 됐다. 사회 곳곳에서 그 이유와 대안이 논의돼왔다. 경제전문가인 저자가 정치의 영역으로 눈을 돌려 각종 경제지표와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이 괴리를 보이는 이유를 찾는다.

"정치가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이 말은 18대 대선의 유력후보 중 한사람이었던 안철수 후보의 캠프가 전면에 내세운 슬로건이다. 저자는 안철수 캠프에서 정책 전반을 기획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해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가장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는 저자는 현실정치의 꽃인 대선현장에서 한국정치의 맨얼굴을 만나며 자신들이 내건 슬로건에 일종의 의구심을 느꼈던 것 같다. "정치인이나 관료를 만난 사람들은 날것 그대로의 이기적 욕망을 폭발시킨다… 이런 행동은 선거 때 정점을 찍는다. 수백만의 마음속에 있는 욕망의 조각들이 뭉쳐지면서 엄청나게 큰 욕망의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표를 구하려 동분서주하는 후보들은 이 덩어리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치와 이성이 설자리가 없다. 그저 표를 팔아 이익을 사려는 유권자와 이익을 팔아 권력을 사려는 정치인 사이의 거래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대선기간동안 찾는 지역마다 지역개발사업에 대한 요구를 들었다고 한다. 지역에 공항, 철도, 산업단지를 세우라는 요구가 후보들을 압박했다. 이런 대형 토목사업은 국가재정, 사회, 환경 등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고 기획해야 할 것 들이다. 하지만 날것의 욕망이 강하게, 집단적으로 분출되는 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뛰는 후보들은 그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를 무시할 수 없어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게 된다. 이 지점에서 정치라는 것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생각들을 논의하고 수렴하는 제도가 아닌, 타인의 삶, 환경이 어찌 변하건 내 삶이 먼저라는 식의 이기적 욕망이 집단주의로 표출되는 장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의 정치가 대중의 이기주의와 결합한 극단적 증오의 정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후 처음으로 양자대결로 이뤄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51.6%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반대쪽 48%의 지지자가 '멘붕'을 경험했다. 저자는 이 51대 49의 정치지형이 생산해 내는 대중의 증오에 주목한다.

2%만 더 얻으면 내가 원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얻을 수 있으니 그 2%의 유권자를 더 끌어들이기 위해 정치인과 지지자는 물불 안 가리고 상대에 대한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다. 거기엔 대화와 타협, 토론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쯤 되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 현실정치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대중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가 바뀌기 어렵다면 사회가 먼저, 개인이 먼저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살피고 국가 전체의 양적 성장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성장의 속도나 정도는 크지 않을지라도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대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공정거래를 정착시키며 착취를 당하는 수준인 노동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려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또 이윤 극대화보다는 사회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삼는 사회적 경제, 민주적 지배구조를 핵심으로 삼는 협동조합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가치관 또한 변해야 한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장보기의 상당부분을 마트에 의존하게 됐다. 대형마트가 싸고, 편리하고, 고용도 늘려준다는 말, 그 이면에 마트로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개인의 물류저장 비용 등을 감안하면 부가비용의 상당수가 대기업에서 소비자에게로 전가됐다는 사실이 숨어있다.

또 가구당 사람 수는 줄어드는데 아파트 평수는 점점 넓어지고, 냉장고는 커지며, 자동차는 비싸진다. 그리고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사물에 대한 욕망을 떨치지 못해 괴로워한다. '소비도 투표'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소비, 어떤 삶을 사느냐가 정치 지형도 바꿀 수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때다. "우리는 정말 덜 성장하고 덜 소비하면서 살 수 있을까?"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정치적 신념, 종교, 성별, 지역 등 다양한 층위에 놓인 갈등과 증오는 희석되는 대신 상생을 위한 다양한 답안지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최정 기자 journalcj@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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