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1966~)

함께 나눠야할 행복이 있어서 벽은 문이 되었다.

손잡이에서 작은 온기나마 느낄 수 있어서

문은 아직 희망이다.

초인종을 누른다. 손잡이를 놓치기 전에 문이 열렸으면.

기척을 기다린다. 닫혀있는 문은 동굴 같다. 문이 열리면 금세 사라지고 말 동굴 속에서.

하나가 되지 못해 끝내 벽이 되어버린 얼굴.

부고장보다 차가운 낯빛.

표정이 없는 얼굴은 닫혀있는 문보다 견고하다.

문을 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열렸다 닫혀버린 문밖에서 알았다.

사람아, 사람아.

몸과 마음이 따로 드나들 수 있도록. 안팎이 너무 동떨어지지 않도록.

세상 모든 문들이 모두 두 개였으면 좋겠다.

서둘러 문을 닫는 사람은 문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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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인 동시에, 안과 밖을 차단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서 문은 자주 얼굴빛을 바꾼다. 그리운 사람 앞에서는 반가운 얼굴로 열리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딱딱한 얼굴로 굳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식은 사랑 앞에서 문은 "부고장보다 차가운 낯빛"으로 바뀌기도 한다. "아직 희망"이라고 믿었던 문은 그 얼굴을 대하는 순간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닫힌 문은 어떻게든 열 수 있지만, 한번 닫힌 사람은 스스로 풀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의 말대로 많은 관계들은 처음에 "함께 나눠야할 행복"을 위해서 맺어진다. 서로의 "온기"로 얼어붙기 쉬운 마음을 녹여가면서 사는 것, 누구나 원하는 관계의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쉽게 이야기되는 이 관계를 실제적으로 유지하기는 힘들다. 조그마한 상처 앞에서도 사람은 방어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번 입은 상처는 계속 마음에 남아 상대방에게 문 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도 관계이다. 닫는 것은 쉬우나 열기는 어려운 마음의 문,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스스로도 그 문 안에 갇히게 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오늘은 밖에서 떨고 있는 그를 위해서 걸어잠근 문을 조금만 열어보자. 수많은 꽃들도 꽃잎의 문을 활짝 여는 봄이니까.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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