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가니 눈이 내렸고, 밤이 깊어가니 애인이 찾아왔고, 사랑이 깊어가니 이마가 따가웠다

하루에 열다섯 번씩 심심해진 애인과 이마를 붙이고 잠이 들고, 우리는 차이도 없이 솜털 같은 입김을 나누고, 도망가지 않기 위해 다리를 엮었다 창밖에는 흰 눈이 쌓이는데 우리는 이웃도 기약도 없이 애인이 되었다

아득하고 서러운 식물이 키를 높일 때 방 안에는 우리의 웃는 얼굴이 방생 되고, 푸른 곰인형에게도 심장이 생길 듯했다 라디오에서 시대의 가난을 이야기할 때 더 가난한 우리는 서로의 발목을 끊어 서로를 먹이고 배가 부르게 쌓인 흰 눈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행성이 태양에 가까워지자 행성의 기울어진 이마에서 미처 눈이 녹기 시작했다 우리는 발자국이 남은 눈 위로 서로의 독해진 눈빛을 자주 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곧 없는 발목으로 떠나지도 못하는 방에는 식물의 이마 같은 떡잎이 떨어졌다 봄이 오거나 여름이 오거나 할 것이었다 발목도 눈도 없이 뜨거운 이마도 버린 채 우리는 그 방에 갇혀 울었다

함께 있어도 겨울처럼 시린 사랑이 있다. 감기처럼 들어와서 '뜨거운 이마'로 앓게 만드는 사랑이 있다. 쌍떡잎식물처럼 두 개의 '이마를 붙이고 잠이' 드는 사랑은, 그러나 거름기도 없는 화분 같은 방에 갇혀 서로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 '발목을 끊어 서로를 먹이'면서 점점 '독해진 눈빛'을 확인시킬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된 외로움이다. 외떡잎식물이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외떡잎 하나를 끌어안고 쌍떡잎인 것처럼,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사랑… '떡잎'이 떨어지고 잎이 나오는 순간 자신들이 하나가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당장은 그것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사랑. 이렇게 미련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라는 '행성'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의 정중앙에 서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계절, '뜨거운 이마'로 앓았던 사랑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이별의 상처를 줄이는 것은 서로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만 있다면 서로에게 사라진 '발목'을 다시 달아줄 수 있을 것이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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