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행위" 지탄받던 가십 재조명

 성난 초콜릿 조지프 엡스타인 지음·박인용 옮김 함께읽는책·312쪽·1만5000원
성난 초콜릿 조지프 엡스타인 지음·박인용 옮김 함께읽는책·312쪽·1만5000원
생시몽 공작은 프랑스 왕정이 권력의 정점에서 혁명으로 접어드는 1691년부터 1723년 사이에 베르사유 궁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고록으로 남겼다. 이 회고록은 화려한 궁정에서 일어났던 흥미로운 가십으로 가득하다. 루이 14세 사후 섭정이 된 오를레앙 공작에 대해 '사생활이 좋지 않다', '루이 14세가 누구와 동침을 한다', '어떤 이의 성격은 비열하고 야비하지만 어떤 이는 모두가 함께 지내고 싶어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3000페이지나 채우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늘어놓는 '뒷담화'가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시몽 공작의 '회고록'은 역사가들에게 유용한 사료를 제공했다. 또 스탕달, 발자크, 프루스트 등 많은 프랑스 소설가들은 생시몽을 존경했고 그들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뒷담화에 능하다. 또 좋아한다. 본능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통념에 따르면 가십은 하찮고 저열한 것이지만 학교, 회사, 마을 등 어떤 조직과 공동체에서든 가십은 공공연히 존재한다.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 다양한 매체에 인간 심리와 속성 등에 관한 글을 기고해 온 엡스타인은 '성난 초콜릿'에서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영원히 목숨을 부지할 인간의 행위인 '가십'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입조심을 강조한 전통적 윤리관 때문인지 세계 어디서든 가십은 '그른 행동'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사회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은 가십이 인간 관계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빙햄턴대 생물학 및 인류학 교수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가십은 한 집단의 행태를 규제하고 그 집단의 구성원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우 세련된 다기능적 상호작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십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현재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잘 알수있고 주위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남 욕을 하면서 유대감을 느낀다.

가십은 또 그 공동체나 사회가 따라야 할 규범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은 의미로 '씹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이나 별난 가치관, 모난 성격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이는 곧 타인에 대한 가십을 나누는 행위 속에 옳고 그른 행동에 대한 기준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그 효과가 얼마나 되는 지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가십이 그 사회에 맞지 않는 행동을 자제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특정 행동에 대한 관용을 증대시켜 공동체의 규범을 느슨하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도박을 한다더라', '혼외정사를 한다더라', '마약을 한다더라' 등의 가십이 오히려 '그들도 그렇게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정당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욕했다는 찝찝함이 따라붙는데도 가십을 즐기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그 동기가 매우 다양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악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비열한 동기'가 될 수도 있고 단순히 알고 있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일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분석이 동력이 될 수도 있고 '나는 그와 다르게 도덕적이다'라는 사실을 알리며 자기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서일수도 있다.

저자는 사적인 차원의 가십에 대해서는 동기, 기능 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려 하지만 공적인 차원의 가십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미국 인터뷰 여왕 바바라 월터스는 과거 사적관계의 전유물로 여겨진 가십을 공적으로 활용해 재미를 본 예다. 그녀는 TV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에서의 미묘한 힘의 균형이나 경제 전망, 과격 이슬람주의 같은 문제를 다룰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가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통속적인 문제를 예리하게 질문하리라는 기대감으로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본다…그녀는 바버라 부시에게는 우울증에 대해 묻고, 보리스 옐친에게는 과음을 하는지 물으며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지 카다피에게 제정신인지 묻는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인의 사적인 부분이 대중에 알려지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라도 있다. 사인 사이에서 귓속말로나 전해지던 민망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대중매체와 인터넷 파급력에 힘입어 날개 돋친 듯 대중에게 전해진다. 사춘기 청소년이 파괴적으로 행동하려는 특성에 빗대 인터넷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한 프라이버시 법 분야의 법학자 다니엘 솔로브는 "인터넷은 가십의 속성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비터웨이트리스(bitterwaitress)'라는 블로그는 팁을 짜게 준 고객의 실명을 공개한다. 얼굴도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짠돌이, 짠순이로 낙인 찍히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그 남자와 데이트하지 마세요'라는 블로그도 있다. 이 블로그는 사귀던 여성에게 실망을 준 남자들의 실명과 프로필 그 구체적 행위 등 그들을 괴롭히고 비난할 수 있는 온갖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블로그가 묘사하는대로 그들이 거짓말쟁이일수도, 마마보이일수도, 성격이 더러울 수도 있지만 이 정보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이 있다면? 가십은 명성을 더럽히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혹은 내가 잘 아는 인물에 대한 가십일때 흥미가 돋는 법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가십과 그에 얽힌 사연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이 미국의 사례여서 가십을 접할 때 경험하는 특유의 '마력'같은 흡입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또 가십은 누구나 즐기고 순기능도 있지만 심할 땐 사회적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도'를 지켜야 한다는 결론은 뒷담화에 따라붙은 죄책감을 떨쳐내 주기엔 한계가 있다. 최정 기자 journalcj@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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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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