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daejonilbo.com

박근혜 정부에서 '대전·충남 무(無)장관 시대'가 열렸다.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배신감에 민심도 돌연 냉담해졌다. '멍청도', '핫바지'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이가 없다보니 헛웃음이 나온다는 얘기도 한다. 냉정하게 화를 누그러뜨린 후 '대전·충남에 장관이 될 재목이 그렇게 없나' 하고 자문도 해보지만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도 한다.

충청권은 늘 정권 탄생의 산파역을 해왔다. 박근혜 정부 탄생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대선 전에 지역정당의 문패까지 내리면서 보수대연합 구축에 기여했다. 그 결과 대전·충남의 지지도가 박 당선인 쪽으로 기울었고 큰 표차는 아니지만 집권에 견인차가 된 것은 분명하다. 돌아온 결과는 '대전·충남 무장관'이다. 내각 명단을 놓고 요모조모 따져 봐도 무시당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데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다.

충청권은 대전·충남·충북을 지칭한다. 정치공학적으로 지역 정서를 얘기할 때는 대전·충남을 먼저 떠올린다. 충북은 같은 충청도지만 대전·충남과는 색깔이 좀 다르다. 보수보다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 박 당선인도 그걸 인식해 대통령 선거운동 첫날 대전·충남지역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지 않았던가. 대선의 승패는 충청권 표의 행방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승리한 박 당선인은 대탕평을 약속했다. 지역 민심은 충청도 정권이 창출된 것으로 고무됐다. 기대감도 컸고 지역출신 유력 인사를 대상으로 '하마평'도 무성했다. 하지만 내각 명단이 발표되자 박 당선인의 대탕평은 약속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역대 정권에서도 없었던 '무장관'이란 초라한 결과는 '충청권 홀대'라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망각의 싹을 움트게 했다. 상한 자존심을 추스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박근혜에 대한 기대감은 결국 배심감만 남긴 채 사그라져 갔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내각 명단에 충북 출신이 두 명이나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변명거리도 안 되는 주장이다. 충청도에 충북만 있는 것도 아니고 투표인 수에서도 차이가 크다. 대전·충남은 유권자가 300만 명에 육박하지만 충북은 절반도 안 되는 123만 명이 고작이다. 득표수는 충북에서 52만 표인 반면 대전·충남·세종에서 120만여 표로 비교도 안 된다. 논리가 빈약하다. 박 당선인 모친의 고향이라서 배려했다면 차라리 설득력이 있고 인간적이다.

박 당선인의 득표수를 따져봐도 대전·충청권이 처참할 정도로 무시돼서는 안 된다. 박 당선인은 호남권에서 고작 33만여 표를 얻는데 그쳤다. 반면 충북을 제외한 대전·충남·세종에서 120만 표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호남권 인사는 박근혜 정부 내각 명단에 두 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내각을 구성하는데 지역별 득표수를 고려해 안배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충청도민 입장에서는 괜히 이런 쪽에도 마음이 쏠린다. 표의 대가를 바란 건 아니지만 표의 등가성에 관심을 갖는 것도 충격파가 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이기에 더 미련이 남는다.

강변이 있을 수도 있다. 100% 필자의 가정이지만 기존의 탕평과 궤를 달리하는 '박근혜표 대탕평'을 선보인 것이란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동의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연과 학연, 세대, 성별 안배와는 다른 고정관념을 틀을 깨는 새로운 개념의 대탕평 말이다. 바로 '성시경'·'위성미'·'서연관'으로 집약되는 '대탕평'이란 억지춘양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나씩 설명을 해보면 '성시경'은 성균관대·고시파·경기고 출신, '위성미'는 위스콘신대·성균관대·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서연관'은 서울·서울대, 연구원 및 교수·관료출신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꼬집어 만든 신조어다. 설득력이 약하지만 탕평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한낱 궤변일 뿐이다.

대전·충남의 유권자는 세종시를 지켜낸 박 당선인에게 평균 득표율 이상의 표를 몰아줬다. 세종시를 지켜준 것에 대한 보은이자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가 표심을 자극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손으로 뽑은 박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인데도 후회의 말을 곁들여 과거 '인기 없는 대통령'과 비교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한다. 충청도 양반이 홧김에 하는 그냥 말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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