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1962~)

매달렸던 그 끝에서

아쉬운 듯 두려운 듯 망설이다

손을 놓고 뛰어내리는 물방울

토-

-오-

-옥

소리 아득하다

긴 모음은

물방울의,

물방울 소리의 그림자

산산이 흩어지는 울음소리를 다스려

제 안으로 감싸는, 끌어안는

소리 그림자

기억에서 지워진 다음에도

실루엣으로 오래 남은 사람처럼

그 모음 길다

참 깊다

한낮엔 제법 따뜻해진 햇살이 지붕마다 내려앉는다. 처마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도 겨울의 기억들을 녹이며 한 방울씩 떨어진다. 예전에 내가 알던 누군가는 고드름이 녹으면 그 밑에 사발 하나를 놓아둔다고 했다. 떠나는 겨울이 남기는 눈물, 그 눈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제 속에 얼어붙은 아픔도 치유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아마 그 사람도 쪼그려 앉아 사발 속에 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물방울의,/ 물방울 소리 그림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을 것이다.

맑은 소리에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 효능은 병원에서 처방하는 알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부작용이 없을뿐더러 누구에게나 처방이 가능하다. 또한 "기억에서 지워진 다음에도/ 실루엣으로 오래 남은 사람처럼" 마음에 머물며 상처를 어루만져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맑은 소리를 찾아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듣기 위해서는 우선 맑은 귀를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산이 흩어지는 울음소리를 다스려/ 제 안으로 감싸는, 끌어안는" 귀가 없이는 안 된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맑은 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라도 놓치면 뒤떨어질까 세상의 소리에만 귀를 열어놓고서, 마음 한 편에는 맑은 소리에 대한 갈증을 계속해서 쌓아간다. 갈증을 풀고 싶은가? 스스로 물방울이 되어 조바심으로 매달린 생활의 "끝에서" "손을 놓고" "뛰어내"려 보자.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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