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연기획 대표

며칠 전,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미국 뉴욕의 상·하원 정치인들이 음력 설날을 공립학교 휴교일로 지정해 줄 것을 뉴욕시정부에 촉구했다는 소식이었다. 언뜻 보면 '왜 미국에서 우리나라처럼 구정 설을 기념하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기사였다. 그러나 뉴욕에는 이미 15% 이상의 아시아인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 역시 매년 우리처럼 구정 설 명절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니 이해가 갔다. 이날 휴교일 지정을 촉구한 정치인들은 "설날은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 최대의 명절이며 뉴욕에서도 많은 이들이 명절을 즐기고 있다"며 "설날을 휴교일로 지정하는 것은 아시아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처럼 설은 이제 아시아의 일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경을 초월해 자신의 뿌리를 찾아 조상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로 각인되고 있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다가오고 있다. 설을 맞아 고향에 찾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친지와 가족을 만나 설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것이 요즘 설의 풍경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명절 일거리에 벌써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설 연휴에도 삶의 현장에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설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조상을 기억하며 우리 사회의 공동체 결속을 강하게 하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설이라는 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설이란 말이 생겨난 데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설의 어원은 '선날' 즉 개시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비롯돼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소망을 준비하듯 이 어원에는 새로운 해가 시작하고 새로운 날이 시작하는 설레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설의 어원에는 설레는 마음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중 하나는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즉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로운 체계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에서 시작된 말이라는 설도 있다. 아직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라는 것이다. 설이라는 말이 '섧다'에서 온 걸로 보아 '슬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설도 있다고 한다. 즉, 설이란 마냥 기쁜 날이기보다는 한 해가 시작할 때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디라는 의미를 담은 표현인 것이다. 이는 좋은 일을 맞이하였을 때도 그 일로 다른 이가 마음을 다칠까 염려하고 살피며, 한 감정에 치우쳐 극단적으로 되는 것을 경계하며 중도를 지키려는 조상님들의 사려 깊음과 지혜가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계사년의 새날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다가온 새날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소망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새로움을 신중히 받아들이고 조심스럽고 진중하게 첫발을 내딛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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