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시인·고려대 교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분야 중의 하나가 문학일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상당 수준의 전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펜만 잡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초보적인 글쓰기이다.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초보적인 글쓰기가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중심에 있어서도 세대 이동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2010 경인일보 신춘문예에서는 74세의 여성이 시 부문의 당선자가 되었고 2012년에는 71세 할아버지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에 당선했으며 70에 한글을 배우고 73세에 첫 시집을 낸 할머니의 시집 '치자꽃 향기'가 2012년 우수문학도서가 되었다. 이런 소식은 국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2013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 문학상에 75세의 문학소녀가 선정되었으며 98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으로 등단하여 일본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시바다 할머니가 1월 20일 새벽 101세로 행복한 노년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한국의 여러 문학잡지에서도 신인상 최종 후보에 노인 지망생들이 몰리고 있어 심사자들이 나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중국의 대시인 두보는 '인생 70은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고 탄식했으나 '늙은 조개가 구슬을 낳는다(老蚌出珠)'라는 명구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세계적인 대문호들은 대체로 70 전후에 위대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진 괴테의 '파우스트'는 60여 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며 80에 이른 만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또한 중년에 시작하여 노년에 이르는 25년 동안 집필된 작품이다. 원숙한 경험이 원숙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한국의 노년세대가 지닌 문학적 열정은 그 이전 다른 어떤 세대도 누리지 못한 독자적 존재감의 표현이다. 그들은 일만 하고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세대가 아니라 일하고 남은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에 더 본질적인 존재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세대이다.
물론 누구도 돌보지 않아 고독하게 죽는 노인들도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 부부도 있다. 그러나 생활보호대상자이지만 사후 어려운 아이들에게 써달라고 자신의 전세금을 기탁한 노인도 있고 산양을 키워 모은 돈으로 장학금을 희사한 할머니도 있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중대한 문제이다. 한 단체가 제정한 '신노년문학상'에 응모작이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얼마 전 옛 고등학교 선생님이 오랫동안 써 모은 원고 뭉치를 가지고 오셔서 읽어 본 적이 있다. 이처럼 100세 건강시대를 맞아 문학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분들을 청춘노년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문학을 청춘노년문학이라 부르고 싶다. 인생의 사이클이 달라진 상황에서 청소년문학만이 아니라 청춘노년문학에도 새로운 주목이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은 부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청춘은 나이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춘노년문학 지망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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