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한국기행'

△밤 9시 30분= 한반도 최남단 전라남도 해남에서 이 땅은 끝나고 또 시작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남의 척박한 지리적 환경은 동북아 3국을 연결하는 문화 이동로이자 다양한 문화를 꽃피우는 토양이 됐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 탓에 겨울에도 초목이 마르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으며 너른 황토밭은 고구마와 배추 같은 양식을 길러내느라 분주하고 바다에는 김과 전복이 넘쳐난다. 해남을 '황금곳간' 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저 자연이 하자는 대로 살면 주어지는 넉넉한 삶. 해남에는 그곳의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겨울 땅끝 바다에선 어부의 그물이 해보다 먼저 바다 문을 두드린다. 송지면 갈두리 땅끝 마을의 박태영 씨는 이른 새벽부터 새우잡이 배를 바다에 띄운다. 새벽잠을 설치고 바닷바람과 싸운 것에 비하면 그물이 허전하지만 욕심내지 않는 마음은 언제나 만선이다.

한 때는 쇠락의 길을 걸었던 북평면 남창장은 장을 되살리려는 시장상인들의 노력 끝에 지금은 남도 최고의 어시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남창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낙지다. 낙지의 차진 맛이 소문이 나 장이 서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북평면 서홍마을의 밤은 낮보다 환하다. 때를 기다렸던 마을 사람들이 홰낙지 잡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예전엔 횃불을 들고 다녔지만 요즘엔 장비가 좋아져 낙지잡이가 훨씬 수월해졌다. 또 오산마을 갯벌에 돌꽃, 석화가 만개했다. 오산사람들이 석화를 굴이 아닌 '꿀'이라고 부를 만큼 그 맛이 달콤하다. 추울수록 풍성해지는 땅끝 바다의 겨울 잔치를 누려보자.

성지현 기자 tweetyandy@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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