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역사스페셜'

△밤 10시=1623년 3월 12일, 인조반정이 일어나던 날 조정엔 이미 정보가 입수돼 있었다. 역모의 움직임을 고발하는 한 통의 상소를 받은 광해군은 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여기에는 한 여인이 개입돼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 여인의 이름은 상궁 김개시였다. 그녀는 천민의 딸로 동궁소속의 나인으로 입궐해 광해군을 보필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15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천민출신에 미색도 아니었던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광해군의 마음을 얻게 된 것일까.

광해군은 왕세자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갑작스레 세자에 책봉되어 전란을 수습하면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후 왕위를 계승하는데 있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선조의 궁녀로 활약하기도 했던 김개시와 대북파의 도움으로 1608년 왕위에 오르게 된다.

임진왜란을 통해 전쟁이 백성들에게 남긴 상처를 체험한 광해는 대내적으로는 대동법으로 민생을 살피고 대외적으로는 실리를 챙기는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펼치는 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토지의 소유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대동법은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사대부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후금과의 외교정책은 명나라를 섬기던 사대부들의 성리학적인 세계관과 마찰을 빚게 된다. 광해군의 파격적인 개혁은 지지세력이던 대북파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다. 더불어 측근들의 비리로 인한 부정부패는 인조반정의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벼슬을 얻으려면 김개시를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개시는 광해군이 재위한 15년 동안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의 일생을 통해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 그리고 왕의 조건에 대해 되짚어본다. 성지현 기자 tweetyandy@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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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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