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4 23:55

[한담청론] 충청지역 기호학파 여성인물의 전개

2012-11-27기사 편집 2012-11-26 21:46:08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기호학파(畿湖學派)는 학술적으로는 이이의 학설을 따르는 주기적(主氣的) 경향의 성리학자들을 가리킨다. 기호학파는 지역적으로 기호지방 즉, 서울·경기·황해·충청·호남 일원에 거주했으므로 기호학파라 부르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영남학파는 이황을 종주로 주리설(主理說)의 성리학을 펼쳤는데, 안동의 도산서원을 근거지로 영남지방에 분포했다.

기호학파는 17·18세기 이후 다양한 학파로 분파 현상이 대두되었다. 주자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고, 예학·양명학·실학·경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상의 꽃을 피웠다. 기호학파 인물로는 이이와 동시대 인물로 성혼 송익필이 있으며, 이후로 차세대 제자인 김장생·김집·송시열·송준길·이유태·유계·권시·조익·이재·윤선거·김수항 형제·김창협 학맥이 주류를 이룬다.

기호학파 개별 인물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기호학파 인물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해명되어야 할 몇 가지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것은 첫째, 철학사상과 관료가로서의 접근이 연구의 지배적 성향이라는 점, 둘째, 여성 학자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기호학파 여성지성사의 전개에서 대표적인 여성만을 거론하면 16세기 창령성씨(연기)·김임벽당(1492-1549), 17세기 이설봉·이옥재(1643-1690)·김운(1679-1700), 18세기 김호연재(1681-1722)·오청취당(1704-1732)·임윤지당(1721-1793)·곽청창·나주임씨, 19세기 강정일당(1772-1832)·서영수합(1753-1823)·홍원주(1791-?), 20세기 남정일헌(1840-1922) 등이다.

창령성씨는 성삼문가 여성으로 연기에서, 김임벽당은 유여주가의 여성으로 서천에서, 이설봉은 송준길의 증조 송세영의 외손녀로 천안에서, 김운은 농암 김창협의 딸로 경기에서, 이옥재·김호연재 모녀는 월사 이정구와 선원 김상용의 후손으로 김성달·송준길가와 혼맥으로 홍성과 대전에서, 임윤지당은 녹문 임성주의 동생으로, 임성주는 율곡 이이 → 사계 김장생 → 우암 송시열 → 수암 권상하 → 도암 이재로 이어지는 기호 노론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서영수합과 홍원주 모녀는 농암 김창협의 외손으로 경기에서, 강정일당은 권상하가의 외손으로 제천에서, 남정일헌은 남구만의 후손으로 창령성씨가의 여성이 되어 예산에서 각각 활동하였다. 나주임씨는 창계 임영(1649-1696)의 매씨로 나주가 고향이며 임씨가 쓴 선원 김상용의 '화상찬' 등 작품의 편린은 호남지역에서 생산된 매우 소중한 작품들이다.

물론 위에 거론한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학파적 논쟁이나 이론을 천명하며 사회활동을 펼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호연재·임윤지당·강정일당 같은 일군의 여성들은 이미 여성성리학자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성리학의 도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최종적으로는 군자가 되고자 하였던 여성들이다.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의 차이가 없고, 성인을 따르는 뜻이 매우 간절함을 천명하였다.

이 여성들은 기호학파의 자장 안에서 글로, 효와 열의 실천의지로 삶을 일구었다. 이 여성 엘리트들의 삶에 대한 자각과 용틀임 현상은 다른 여성들의 자아정체성 찾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미미한 움직임은 여타 여성들의 글 속에도 포착된다.

기호지역은 여타의 어떤 지역에 비하여도 수준급 여성 지식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가부장제가 고착되어 가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 지식인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기호학파 성리학의 난숙과 여성 지식인의 지적 욕구가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자 한다.

여성에 의해 한 가문의 가격(家格)과 전통은 유지된다. 탄탄한 혼맥 네트워크에 의해 가문의 정신적·경제적 세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특히 며느리의 경우는 사위보다 중요도가 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경제와 자녀교육의 실상이 어느 정도 여성에 의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가문의 실질적인 경영은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았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시대 성공한 남성들의 공부 배경에는 어머니, 할머니 등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가정 속의 교육자'가 있다. 기호학파의 가문은 그러한 여성들의 교육에 등한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위에 거론한 여성 지식인의 배출과 활약이 그 증거이다. 우리나라 여성문학사(철학사)의 쟁쟁한 여성들이 기호학맥의 전개 속에서 배출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최근 충청권의 현안사업으로 '기호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이 부각되고 있다. 이 사업은 '경북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에 자극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 중심, 문화재 중심 외관의 보수 및 개발, 활성화에 치중하고자 하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필자는 21세기 유교문화는 '공간과 장소성'을 넘어, 그 안에 '사람과 문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