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변호사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출산율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다.

모 후보는 "자살률이 우리나라의 현재를, 출산율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말했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34위라고 한다. OECD 34개국 중 가장 불행한 나라이다.

다른 나라에서 안 살아봐서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생존하는 것이 녹록지 않음을 느낀다. 외벌이로는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자녀 교육비에 노후 대비도 제대로 못 하게 생겼는데 출산을 장려하는 공익광고를 볼 때마다 속에 열불이 터진다.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아이 하나는 낳아야겠다 싶어 아이를 갖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나 힘이 들까. 요즘엔 초등학생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다고 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성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고상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니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같이 살벌한 자본주의에서 고상을 떨려면 돈이 필요하고, 부모가 아이에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마련해주지 않는 한 자신의 힘으로 고상하게 살려면 좋은 학교,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비관적이긴 하지만 나도 내 아이에게 기업체나 건물 하나 남겨줄 입장은 안 될 테니 내 아이도 평생 노동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지금껏 경쟁에서 이기며 살아 온 편이지만, 이제 지쳤다. 죽을 때까지 경주마처럼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험, 진학, 취업, 육아 등등 모든 게 경쟁이다.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옷 등등 겉만 번드르르하지 대출 빚과 신용카드 빚을 갚기 위해 도살장 끌려가듯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기괴함마저 든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사회가 나를 속이는 것인지 내가 나에게 속고 있는 것인지 빚으로 만들어진 허황된 현실 속에서 내가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며,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재벌 2세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어대는 내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종묘공원의 '박카스 할머니'를 덮어놓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나에게 불행이 닥쳐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늙어버리고 내 곁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는 저 머나 먼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그 할머니들 대부분은 젊었을 때 매춘과는 무관한 평범한 삶을 살았었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급여 명세서를 보면, 세금으로 상당히 많은 돈을 국가에 납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국가는 대체 그 세금으로 뭘 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재벌은 영세상인들 좌판까지 뒤집어엎고 있는 형국이고, 급여는 하향 평준화되었고,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입'되고 있고, 비싼 등록금 내가며 대학 졸업해도 취업할 데는 없고, 간신히 취업해도 결혼자금에, 자녀 양육비에, 그러다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시기라도 하면 병원비 때문에 내 집 마련과 노후 준비가 물 건너가 버리게 되는 현실.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가 '오늘도 무사히'를 뇌까리며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다소 오버하는 걸까.

몇 년 전부터 의료민영화 문제까지 밤잠을 설치게 한다. 국가를 믿을 수 없으니 이제 믿을 건 나밖에 없는데, 위급상황에서 스스로 응급처치라도 하려면 의료 관련 자격증 하나라도 따놓아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 중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누가 와서 내 밥그릇 걷어차지 않을까 늘 걱정해야 하는 대한민국. 예외는 없다. 0.1%의 재벌을 제외한 모두가 재벌의 밥이다.

대선이 약 한 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인물 자체에 대한 개인적 호감도를 떠나 대통령으로서 마음에 들었던 역대 대통령은 단 한 분도 없었다. 뽑아놓고 보니 '어라, 이게 아닌데' 싶은 분도 있었다. '누가 되든 크게 다르겠는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권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선거권 행사가 국민의 권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나는 갓 태어난 우리 아이를 들쳐 업고 아침 일찍 투표소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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