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daejonilbo.com

`박제가 된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대전시립미술관 로비에 몇 년 채 웅크린 듯 버티고 있는 `프랙탈(fractal) 거북선`이 딱 그 짝이다.

2009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서울 빛 축제에 잠깐 나들이 한 것을 제외하고는 2002년부터 10년간 남의 집 문간방에서 더부살이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백남준 작품 중 이렇게 기구한 운명에 처한 작품은 프랙탈 거북선이 유일할 것이다. 이유 불문하고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품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대전시 문화행정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프랙탈 거북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다익선` 다음으로 큰 대작이다. 국내에 있는 백남준의 작품 중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작품 가격을 매긴다면 수십억 원은 호가할 것이다. 설령 대전시가 필요에 의해서 구입을 하고 싶어도 구입 자체가 쉽지 않은 명품 비디오 아트다. 미술관 로비에 박제가 된 채 애물단지로 취급받을 작품은 결코 아니다. 대전이 내놓고 자랑해도 손색이 없을 소중한 작품이다. 마치 표구조차 하지 않은 그림처럼 이런 푸대접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프랙탈 거북선은 `93 대전 엑스포` 당시 백남준이 헌정, 재생조형관에 설치됐다가 창고에 방치돼 있던 것을 대전일보가 찾아내 원형 복원 당위성을 보도하면서 대전시립미술관으로 옮겨진 작품이다. 옮길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미술관 로비 공간이 좁아 가로 18m, 세로 10m, 높이 4m의 초대형 작품을 설치하기에 적합지 않았기 때문이다. 받침대도 없이 설치한 것도, 날개를 활짝 펴지 못한 채 불안전한 상태인 것도 협소한 장소 탓이다. 그래서 일단 임시로 옮긴 후 추후 적합한 장소를 마련해 다시 옮겨 설치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게 벌써 10년이 된 것이다.

좁은 공간은 감상에도 큰 불편을 주고 있다. 가시권이 확보되지 않아 감상이 불가능 할 정도다. 관람객은 `이게 그 유명한 백남준의 작품`이구나 하는 정도로 만족을 해야 한다. 훌륭한 작품을 소유한 대전시도 이런 문제 때문에 드러내놓고 홍보도 못했다. 뭐니뭐니 해도 세계 무대에서 한국사람 중 백남준을 대신할 작가는 아직 없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전시로선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대전시가 프랙탈 거북선 이전에 아주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서울 광화문 나들이를 계기로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의 회소성과 작품성이 부각되면서 대전시도 이전에 적극성을 보였다. 시립미술관이 중심이 돼 이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을 벌인 결과 지난해 문광부로부터 이전 설계용역비까지 확보했었다. 하지만 심의과정에서 설치방식에 대해 지상이냐 지하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무산된 채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하기로 했다. 그 바람에 국비도 반납을 하고 이전 계획도 답보상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꿰는 방법을 놓고 우왕좌왕하다 만 꼴이 된 것이다.

대전시는 조만간 이전사업을 재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올해 착수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추진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장소와 설치 방식을 결정한 후 국비 등 예산까지 확보하려면 내년에도 어려울 수 있다. 제대로 된 감상환경을 기대하는 시민 조급증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물론 더 좋은 선택, 최선의 결과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업이 지나치게 지연되면 성과도 퇴색되는 법이다.

백남준은 음악가, 미술가, 전자공학도이자 철학자였다. 그렇지만 어느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았다. 경계를 부단히 허물었다. 노마드(nomad)처럼 장르 사이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 들면서 소통했다. 그리고 통섭(統攝), 융·복합, 이종교배를 통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을 창조해 냈다. 백남준의 작품 탄생 비밀 중 하나가 소통이듯 프랙탈 거북선도 대중과 소통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소모적 논란으로 더 이상 배가 산으로 가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설치 장소 물색과 함께 이전을 서둘러야 한다.

생전에 백남준은 미래는 `소통하는 자`들이 지배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대전시와 시립미술관은 `박제가 된 프랙탈 거북선`이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데 다른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이유다. 박제된 거북선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은 소통 인자를 심어주는 것 뿐이다. 미적미적 하다가는 지난 10년이 그렇듯이 앞으로 10년도 금세 지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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