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비밥 (2003년 作)/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

드라마 '타짜'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

'카우보이 비밥'은 2071년 화성을 중심으로 한 태양계를 무대로, 우주선 비밥호의 동료 현상금사냥꾼, 스파이크 스피겔, 제트 블랙, 페이 발렌타인 등의 활약을 그린 하드보일드터치의 SF의 애니메이션이다. 1998년 TV시리즈가 나간이래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시키며 전세계적인 성공을 이뤄낸 이 작품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지휘 아래 이소룡의 절권도를 차용한 주인공 스파이크의 감각적이고 현실감 있는 액션과 60, 70년대 팝아트 컬처의 세련되고 모던한 화풍, 아메리칸 뉴시네마와 홍콩 누아르의 영향 아래에 있는 스토리텔링과 장면구성을 통해 TV시리즈 애니 답지 않은 깊은 완성도를 이뤄냈다.

특히나 'Bebop'이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재즈풍의 OST가 대단히 인상적인 이 작품은 작곡가 칸노 요코의 탁월한 재능으로부터 기인한 다양한 장르의 BGM-재즈로부터 블루스, 록, 테크노 등의 보통 SF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운 팝뮤직의 향연-이 호접몽을 연상시키는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지닌 스토리텔링과 만나 '카우보이 비밥'만의 독자적인 영역과 스타일을 이뤄냈다. '카우보이 비밥'의 성공 이후 감독 자신조차 성공요인의 5할 이상을 작품의 OST라고 지목했을 만큼 칸노요코의 음악은 단순한 OST의 영역을 넘어서는 완성도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TV시리즈로서의 '카우보이 비밥'의 출발은 이후에 성취한 결과에 비해 대단히 초라한 것이었다. 1998년 TV도쿄의 심야애니프로로 첫 선을 보인 후 '카우보이 비밥'은 방영 내내 선정성과 폭력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소년 폭력의 심각성으로 인해 TV도쿄의 강도 높은 규제를 받아야 했던 이 작품은 작화의 많은 부분을 손질당해야 했고 이것은 전체 작품의 완성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보다 더한 불운은 환호하는 팬들의 기대와 달리 전체 시리즈를 모두 선보이지도 못한 체 12부와 특별 편을 끝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는 점이다. 팬들은 분노했고 비운의 운명을 맞은 수작은 그렇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감독은 TV도쿄에서의 피날레 방영을 통해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전언을 전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카우보이 비밥'은 정확히 4개월만에 일본 케이블 TV인 'WOWOW'를 통해 전시리즈를 방영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오리지널 그대로의 작화와 함께 최종편 26화가 방영되는 동안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카우보이 비밥'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특히나 칸노 요코의 완성도 높은 OST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시리즈가 1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찬사를 받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이후, '카우보이 비밥'은 극장판 '천국의 문'을 통해 예의 전시리즈를 통해 선보였던 독특한 세계관, 즉, 첨단 과학기술의 세상 속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들이 펼치는 아날로그와 LOW-TECH의 절묘한 노스텔지어 세계를 다시 한 번 이어간다.

'카우보이 비밥'은 성인취향의 애니메이션이다. 시종일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지만 생의 무게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사는 고독한 영웅들의 얘기다. 이 비장미와 허무주의는 누아르의 법칙과 많이 닮아 있다. 주인공 스파이크의 헝클어진 머리와 말 그대로 '비밥'스러운 외모는 어떤 관계도 수용하지만 어떤 관계도 버릴 수 있다는 듯 꽤나 마초적이다. 더불어 대단히 쿨하다.

역동적인 액션신은 설명하는 게 사족일 정도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장대한 스케일의 '스페이스 오페라'는 아니지만 '비밥'은 '비밥'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새로운 노래, '스페이스 재즈'를 즉흥 연주한다. 그것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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