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1967년 作)/장 피에르 멜빌 감독

드라마 '타짜'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

사무라이는 누구보다도 먼저 죽어야 한다. 명예와 윤리 그리고 충성이라는 대의 앞에서 상대의 목을 벰과 동시에 언제든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사무라이의 목표이자 정체성이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의 표현양식은 이같은 사무라이의 본질을 형상화하는데 충실하다.

그리하여 과장된 액션은 액션 이상의 과장된 대사로 받아들여지고 그 죽음의 순간은 비장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정반대편에 위치하여 사무라이의 내면을 표현해낸 프랑스 걸작 영화가 있다.

바로 느와르 장르의 선구자 장 피삐에르 멜빌의 67년작 영화 '사무라이'다.

멜빌은 느와르 장르의 선구자로 불리는 감독이다. 홍콩 느와르의 전설인 오우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멜빌의 영향력 아래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치시킨다.

그것은 흡사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이데아인 구로자와 아키라에게 보내는 존경과도 비슷하다.

멜빌이 만든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우울하다. 폭력의 정황은 있으나 액션은 다소 인색하다.

그마저도 과장라곤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더 냉정한 측면이 있다.

멜빌은 내용의 흐름을 위해 사용하는 액션이 오히려 그 흐름을 끊거나 방해하는 것을 꺼린다. 그는 액션 역시 서스펜스여야 한다고 믿는다.

열쇠도 없이 차에 시동을 건 남자, 코스텔로는 황량한 거리를 가로질러 입구가 휑하게 열린 정비소로 차를 몰고 간다.

그는 정비소 안으로 차를 몬다. 기다리고 있던 정비공은 자동차 번호판을 간다.

운전자는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워 문다. 정비공이든 주인공이든 스크린 밖으로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서랍을 연 정비공이 서류를 건넨다. 코스텔로가 팔을 뻗는다.

총을 건네받기 위해서다. 그는 총을 주머니에 넣고 정비공에게 돈을 건넨다. 역시 둘 사이엔 어떠한 대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무라이'는 이런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배우 중 하나였던 알랭들롱이다.

배우에게 미모는 가장 큰 무기이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많은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절제하고 절제하고 또 절제한다.

주인공의 내면은 포커페이스를 띠는 알랭들롱의 얼굴을 통해 보일 듯 말 듯 비구체적으로 전달되어지는데 오히려 이것은 알랭들롱의 특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내면구축의 한 방법이 되었다.

예상하다시피 코스텔로는 살인청부 업자다. 그는 알리바이를 만들고, 나이트클럽 주인을 죽이고, 고용주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경찰에게 쫓기며 지명수배자가 된다.

느와르 장르의 선택이 그러하듯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차가운 복수뿐 이다.

영화 내내 멜빌은 차가운 조명과 빛으로 코스텔로의 모든 과정을 세밀히 관찰한다.

영화 '사무라이'에서 선보이는 탁월한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와 비주얼 스타일에서 정점을 이룬다.

감독은 한없이 냉정하고 초연한 알랭들롱에 맞서는 캐릭터로 범인수색을 지휘하면서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경찰을 등장시킨다.

경찰은 코스텔로를 잡아들이기 위해 증인들을 위협하고 코스텔로의 조력자들을 찾아가 그를 배신할 것을 종용한다.

그는 정확히 주인공의 반대지점에 위치해 코스텔로의 담담함에 알 수 없는 깊이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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