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스 (1978년 作)/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의 배경은 관광으로 먹고 사는 애미티 섬이다. 유명한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연해에 식인상어가 출현했음을 효과적으로 알린다. 달밤에 수영하러 들어갔던 여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속으로 사라진다. 모든 증거는 식인상어가 나타났음을 가리키고 있지만 마을의 기관장은 관광객들이 떠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해서 해변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찰서장 의 의견을 묵살한다. 그리고 이후 참혹한 결과들이 스크린을 떠다니고 그와 동시에 애미티는 식인상어를 포획하기 위해 몰려든 사냥꾼들로 북적이게 된다. 브로디는 해양학자 후퍼가 들려주는 드라마틱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식인상어 죠스와 마지막 혈투를 벌이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본질적으로 '죠스'의 식인상어는 공포다. 내면을 알 수 없다는 면에서 '에어리언'이나 '터미네이터'의 그것들과 동일 선상에 있는 공포다. 그것이 사람들의 발밑에 나타나는 순간, 바다는 피로 물들고 살점들이 이리저리 찢겨 나뒹군다. 관객은 비명을 지르고 희생자의 고통에 감정이입한다. 죠스는 공포고 쾌감이고 영화적 엔터테인먼트다. 그것이 영화 '죠스'의 본질이다.

그런 면에서는 살인물고기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공포영화 '피라냐'의 오락적 지향과도 유사해 보인다. 영화 내내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살인 물고기의 출몰과 신체훼손에 관한 서프라이즈는 분명 관객들이 공포영화에게서 바라는 바이다. 현대공포영화의 경향대로 영화 '피라냐'는 수없이 많은 검붉은 서프라이즈를 노골적으로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럼 죠스는 어떤가? 영화 '죠스'에서의 식인상어의 출현은 현대 공포영화의 그것에 비해 대단히 늦다. 이것은 스필버그의 전통적인 전략 중 하나다. 식인상어는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 속에 더 많이 등장한다. 스필버그는 식인상어의 실제모습보다 상어가 인간을 대할 때 취하는 행동의 관점에서 식인상어를 더 많이 보여준다. 상어는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상상과 부합하든 그 이상이든 드디어 공포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며 관객이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다. 그것은 서프라이즈의 효과를 뛰어넘는 공포, 영화 내내 고안해낸 무드의 조성으로 이루어지는 서스펜스,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죠스'라는 영화가 유사 공포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자 스필버그가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게 된 원천적인 이유이다. 대형 식인상어를 스크린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스크린 밖에 숨겨둔 채로 스필버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

'테이블 밑에 폭탄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그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그것은 서스펜스다.' 스필버그는 영화 내내 상어를 테이블 밑에 놔두고 있다. 상어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들에서도 식인상어는 간접적으로만 등장한다. 관객은 상어가 아니라, 상어가 취한 행동의 결과를 보게 된다. 그 결과 '죠스'는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걸작 스릴러 중 하나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영화 내내, 떠다니는 물체들은 보이지 않는 공포, 식인상어를 암시한다. 주인공들이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위해 물이 새는 낡은 보트를 타고 나간 후, 그들은 식인상어를 향해 부표가 달린 작살들을 발사한다. 작살 맞은 상어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부표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은 상어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실제적인 상어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휠씬 더 깊은 긴장과 서스펜스를 만들어 낸다.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공포,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상상에 의한 공포 말이다.

'죠스'는 이전에 만들어진 흥행역사를 모조리 갈아 치웠고, 할리우드의 기대주에 지나지 않았던 스필버그에게 현대영화의 제왕으로 발돋움할 훌륭한 발사대가 돼 주었다. 그 유명한 주제가와 함께 '죠스'의 스릴은 수많은 여름철 SF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드라마 '타짜'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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