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 부총재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한명희 작사에 장일남의 곡으로 된 노래다. 6월만 되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슬픈 노래다.

6·25 전쟁이 끝난 지 벌써 60여 년이 다 되었어도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어제처럼 끔찍스러운 환상으로 다가온다. 전쟁터에서 죽은 어느 이름 없는 한 병사의 돌무덤에 꽂혀 있는 비목이 낯선 남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전쟁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였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 앞장섰던 북한의 지도층이나 그의 명령에 따라 남침을 감행한 인민군이나 전쟁의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참혹함이야 말로써 어찌 다 할 것인가? 누구나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가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더더구나 동족상잔이야 말해 무엇할 것인가?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으니 말이다. 형제가, 숙질(叔姪)이, 동창과 동향사람끼리 서로 마주 보고 총질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끔찍스러운가를. 6·25 때 싸우면서도 제발 그런 일만은 나에게 생기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는 어느 병사의 기록도 본 적이 있다.

전쟁 중에 북한군에게 붙잡힌 어느 국군병사에게 북한군이 총을 쏘려고 하면서 물었단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고. 무심결에 경기중학을 나왔다고 하니까 자기도 경기중학을 나왔다고 하면서 빨리 도망가라고 해서 살아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개울에 엎드려 숨어 있는 국군 앞으로 멋도 모르고 지나가던 인민군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 인민군이 슬쩍 눈을 피하는 바람에 교전 없이 살아남은 국군의 이야기도 들어 알고 있다. 이런 것이 우리네가 갖고 있는 보통의 심리상태다. 인민군이라 하여 특별히 악마 같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전쟁상태에서는 피아의 구분 없이 모두가 도저히 인간이라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의 잔인한 살상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질러진다. 동서나 고금이 다르지 않다. 결국은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최상의 정책으로 알고 대비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6·25도 우리가 북한에게 허점을 보였기 때문에 일어난 남침이었다. 특히 미국은 남북 간의 군사력 차이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15일부터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 6월 29일에 완료하였다. 그리고 50년 1월에 가서는 미 국무장관인 애치슨(Acheson)이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지역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선언을 해버리고 말았다('애치슨 라인').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도둑처럼 남한을 향해 침략을 해 온 것이다. 6·25 당일의 우리 국군과 북한군의 전력을 보면 군인 9만9000명 대(對) 11만1000명, 전차 0대 대 248대, 대포 1200문 대 1700문, 전투기 0대 대 150대였다.

처음부터 싸움이 안 되는 전투력이었다.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북한군으로서는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유엔군의 참전으로 하여 저지된 것이다. 유엔군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의 북한 주민처럼 김일성 3대 세습 체제하에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지옥의 늪지대에서 짐승처럼 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북한정권이나 종북주의자들의 입장으로서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 분한 마음 때문에 북한이나 좌파 종북주의자들은 지금도 주한미군 철수와 보안법 철폐와 한미동맹의 파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는 미군의 존재가 눈엣가시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군의 존재는 최소한 북한의 오판을 막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미안보동맹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려고 하는 작심을 거두려는 마음이 없는 한 우리는 우방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다져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제임스 D 서먼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이양하더라도 한국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한미연합사의 존치는 계속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 제시는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전쟁의 비극은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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