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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광장] 도시의 중병, 도시농업이 고친다

2012-06-01기사 편집 2012-05-31 21: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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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호 충남취재본부장 khko0419@daejonilbo.com

아침마다 집 앞 조그만 산을 오르내린다. 등산로 입구와 맞붙은 텃밭을 돌보는 한 이웃주민이 이틀에 한 번꼴은 날 꼭 불러 세운다. 상추며 쑥갓, 부추 등을 뜯어가 먹으라며 봉지를 내준다. 이 주민은 이른 아침 산을 벗 삼아 운동을 한 후 어김없이 그 조그만 텃밭에서 노동을 즐기는데, 오가는 이웃을 꼭 불러 세워 '뜯어가 드시라'고 권한다. 늘 얼굴이 밝고 건강해 보이는 건 즐거운 노동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과 나누려는 마음 때문일 거다. 요즘 부쩍 도심 내 노는 땅을 이용해 텃밭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눈에 많이 띈다. 몇 평씩 골고루 나눠 주말농장으로 삼기도 하고, 어느 봉사단체는 땅을 얻어 채소 등을 심고, 생산물을 소외계층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텃밭을 구하지 못한 어느 이웃은 아파트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노는 땅 이용률이 높아지는 추세이긴 한데, 그래도 둘러보면 놀리는 땅들이 눈에 꽤 띈다. 잡풀이 무성하고, 쓰레기가 널려 있는 땅들은 눈에 거슬린다. 미관과 도시의 생태적 건강성을 해친다. 요즘 도시농업이 화두다. 지난해 10월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도시농업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더욱 관심과 욕구가 높아졌다. 도시와 농업은 원래 한몸인데, 도시는 농업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20세기 초 산업화 바람이 강하게 불기 전까지는 그랬다. 산업화는 도시와 농업을 둘로 쪼개놓았다. 농업이 도시로부터 쪼개진 후 사회는 서서히 중병을 앓기 시작했다. 환경오염과 공동체 파괴 등은 농업으로부터 분리된 산업화와 도시화가 불러온 중병이었다. 도시인들은 지쳐갔고 늘 우울했다. 도시민들이 농촌을 동경하게 된 건 바로 건강과 환경, 나눔과 공동체를 되찾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됐다.

도시와 농업이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서 도시민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서서히 추슬러갔다. 우리나라에선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도시농업은 이미 21세기 세계도시의 트렌드로 조명받는다. 독일인들은 19세기 중반부터 도시농업의 원형으로 불리는 도시외곽 주말농장,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을 통해 농촌, 농업에 대한 동경과 욕구를 해소했다. 클라인가르텐은 경작 기능을 넘어 여가, 공공녹지 기능으로 변화, 강화되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도시민과 도시가 앓고 있는 중병을 서서히 치유해냈다. 1991년 미국의 해상봉쇄로 소련의 원유공급이 중단되면서 나타난 식량난을 도시농업을 통해 극복해낸 쿠바의 사례는 이미 유명하다. 미국 뉴욕시에만도 옥상에 텃밭을 둔 빌딩만도 600곳이 넘고, 몬트리올에는 8200여 곳의 텃밭이 있다고 한다.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시티팜(City Farm)'이 운영되고 있고, 작은 텃밭과 옥상, 상자, 베란다 등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도시농업이 생겨났다.

국내의 몇몇 도시들도 몇해 전부터 도시농업 육성에 관심과 힘을 쏟아왔다. 서울시와 광명시, 수원시 등은 이미 도시농업 육성조례를 제정했고, 도시농업법 통과 이후엔 지자체들마다 관련 조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왜 세계도시들이 도시농업에 열광하는가? 사회·경제적, 환경적, 교육적 가치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환경과 안전한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건 기본이다. 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도시에선 생태적 건강성이 서서히 회복된다. 에너지 사용량이 줄고, 대기 질도 향상되며 경관이 아름다워진다. 도시농업 경험은 우리 농산물 소비 증대로 이어져 도·농 간의 상생의 길을 열어준다. 특히 주목되는 건 도시농업이 소외계층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복지 수준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비영리 조직인 'Peoples Grocery'와 미국 밀워키주의 비영리 도시농업회사 'Growing power'의 사례는 도시농업이 소외계층의 자립과 복지의 공간으로 활용된 좋은 예이다. 'Peoples Grocery'의 활동은 도시농업을 통해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은 사례로 UNDP(유엔개발계획)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더욱 빛나는 가치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불러온 '상처 나고 파괴된 커뮤니티'가 서서히 치유, 복구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도시농장을 '커뮤니티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도시농업이 환경과 복지, 문화, 경제를 한데 통합하는 지역개발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도시농업법이 제정됐으니, 관련 조례를 만드는 등 제도적, 물리적 인프라와 함께 거버넌스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거버넌스 구축은 도시농업의 핵심 과제인데,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주체적 참여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 보배 같은 가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City Farm'과 텃밭이 보이고, 옥상과 베란다, 자투리 화단 등에서 자라나고 있는 파릇파릇한 먹거리를 지겹도록 볼 날을 상상하며 당장 머리를 맞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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