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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활을 어렵게 하는게 아닌가요

2012-05-11기사 편집 2012-05-10 21: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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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서울정치부장 hkslka@daejonilbo.com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7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택시기사가 질문을 했다. "사람들이 요즘 살기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기치 않은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요즘 세계경제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수출에 의존을 많이 하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어려울 수밖에 없겠죠.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더욱 나쁘고요"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했다.

그는 "제가 보기엔 나라살림살이가 팍팍해 살기 어려운 게 아니라 스스로 생활을 어렵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른손으로 한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 아파트 가보셨나요. 저 아파트를 가보시면 제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아실 거예요. 저 아파트는 13평에서 15평짜리 영구임대 아파트예요. 베란다에 새시가 없는 집이 태반이죠. 그만큼 어렵게 산다는 거죠. 그런데 주차장에 가보세요. 외제차가 수두룩해요. 벤츠, BMW, 아우디. 돈은 벌지 못하면서 폼 잡는다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니 당연히 살기 어렵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병(病)'이 문제예요."

순간 뒤통수를 둔기로 맞은 듯한 멍한 느낌이 전해졌다. 택시기사의 얘기 중에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로 우리는 '있는 체', '잘난 체'라는 '-체병(病)'에 걸린 환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1997년 IMF가 닥친 뒤 환율이 폭등하면서 휘발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당시 자가운전자들이 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리터당 1200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하지만 지난 9일 현재 보통휘발유 전국 평균가격은 리터당 2052.34원이었다. 그것도 지난달 27일에 리터당 2052.34원을 기록한 이후 17일째 하락한 상황이다. 상향조정된 심리적 마지노선인 리터당 2000원을 넘긴 지도 한참 오래 됐다.

흔한 얘기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휘발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당연히 자동차시장이 경차나 고연비차량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어야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외제차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신규등록된 수입차는 10만5037대로 사상 처음으로 '꿈의 10만대' 시대에 접어들었다. 시장점유율도 가파르게 상승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7.98%에 달했다.

반면 경차의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20%를 밑돌고 있다. IMF 당시였던 1998년에 경차의 시장점유율은 27.6%까지 치솟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차 혜택이 폐지되면서 경차의 시장점유율은 급속히 위축됐다. 정부가 경차보급의 확대를 위해 2008년에 경차규격을 기존의 배기량 800cc에서 1000cc로 상향조정했지만 고유가 시대인 요즘에도 경차의 점유율은 여전히 20% 내외에 머물고 있다.

이런 '-체병(病)'은 비단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길을 지나다 보면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해 '3초백'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루이비통 스피디백의 가격은 100만원대이다. 백 하나에 100만원이라고 하면 입이 딱 벌어질 만한데 3초마다 보여진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명품백을 사기 위해 곗돈을 붓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루이비통의 경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빅3' 매장에서의 매출이 전년보다 4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스피디백이 효자상품이었다면 이제는 300만-400만원짜리 '앗치백'과 '루미네즈백'이 대세라고 한다. 그만큼 씀씀이가 커졌다는 소리다. 개구리를 차가운 물에 넣은 뒤 천천히 데우면 물이 뜨거워지는 줄 모르고 가만 있다가 죽는 것처럼 우리의 '-체병(病)'은 부지불식간에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병(病)'은 정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쏟아지고, 대형사업 인허가를 둘러싼 검은거래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무역 1조 달러 경제대국', 'G20·핵안보정상회의 개최국'과 같은 '국격(國格)'만 부르짖고 있다 .

이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만연된 '-체병(病)'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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