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진은 8세 때 외숙인 소남(小南) 이희수(李喜秀)에게 글씨를 배운다. 18세 때 청나라에 유학하여 10여년간 서화를 연구하고 돌아와 왕세자 영친왕의 스승이 된다. 또한 일본에서 사진기술을 배워 어전사진사(御前寫眞師)가 된다. 그리고 종로에 처음으로 천연당(天然堂)이라는 사진관을 연다. 191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랑인 ‘고금서화관’을 개설한다.

1915년에는 안중식(安中植), 조석진(趙錫晉)과 함께 `서화미술연구회`를 열어 후진을 양성한다. 또 안중식·조석진 등과 같이 서화미술회와 서화협회 등을 창립한다. 조선미술전람회 1회부터 6회까지 심사위원을 맡는다.

글씨체를 두루 섭렵하여 일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은 묵죽과 산수, 화조에 뛰어났다. 특히 큰 글씨를 잘 써서 전국에 걸쳐 많은 필적을 남겨 놓았다. 1913년 금강산 구룡폭포 암벽에 새겨진 미륵불(彌勒佛)의 글씨는 한 획의 길이가 13m나 된다고 한다. 가까이로는 충남 서산시 개심사의 해탈문(解脫門)이란 현판이 해강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해강 김규진
해강 김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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