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기화된 불황속에 유흥업소 매출이 외환위기 당시보다도 못한 극심한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매출부진의 직접 원인을 놓고 올들어 시행되고 있는 접대실명제 때문이라는 주장과 장기화된 경기침체가 보다 근본 원인이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지역 유흥업계 실태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접대비실명제 논란의 주요 쟁점은 과다한 접대문화는 기업의 투명성 향상과 바람직한 기업문화로 가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정부와 시민단체등의 긍정적 입장과 돈줄을 묶어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기업 영업의 위축’을 야기한다는 기업체와 ‘생계마저 위협한다’는 유흥업소 및 관련업소종사자들의 부정적 입장으로 대별된다.

▲유흥가 매출 한파, 업소 내놔도 거래 안돼=이런 논란가운데 분명한 것은 접대비 실명제 시행과 맞물려 지역 유흥가의 매출이 급락하고 있으며 그 한파가 주변 업소들로 파장이 미치면서 심각한 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유성을 비롯한 대전지역 대다수 룸살롱과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 매출이 반토막나고 일부 업소들은 경영난으로 폐업 일보 직전이라는 것.

B단란주점 관계자는 “평소 절반 이상 차지하던 법인카드 고객들의 발길이 급감하면서 단골손님이 많은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업소들이 하루에 2개 테이블 손님도 받지 못하고 있어 업소를 유지하기도 힘든 실정”이며 "잘나간다던 업소들의 매출도 절반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경영난에 시달리던 업소들이 가게를 처분하기 위해 잇따라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유성의 D부동산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인근에서 점포를 내놓은 유흥주점들이 10여곳에 이르지만 매매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서 가게까지 나가지 않아 업주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식당가가 밀집한 서구 월평동의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지역 일대의 유흥업소와 식당등 수십개 업소도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심각한 불황을 타면서 선뜻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흥업소 한파 관련업종으로 `도미노`=특히 유흥업소의 매출부진은 관련업종으로 파급돼 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다. 불황을 모르던 유흥가에 극심한 한파가 몰아치면서 택시와 인근의 미장원과 옷가게, 세탁소 등 관련 업종의 경기도 덩달아 곤두박질치고 있다.

월평동의 한 음식점 주인 이모씨(48)는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소비가 준 상황에서 접대비 실명제로 유흥가를 찾는 손님들이 뚝 끊기면서 인근 식당가도 개점휴업상태인 곳이 대부분”이라며 “가게문을 연지 1년도 안된 상황에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유흥가에 줄지어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행렬도 뜸해졌다. 고급 룸살롱과 단란주점 인근에서 손님들과 업소종사자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던 택시들이 손님이 끊기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개인택시 기사 최모씨(48)는 “택시 경력 20년만에 이같은 불황은 처음이다. 새벽 시간대에 손님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아예 철수하는 기사들이 많다”면서 “오늘도 세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두명의 손님을 받았을 뿐”이라며 쓴 웃움을 지었다.

A 부티크 김모사장(여·34)은 “유흥업소 종사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옷과 액세서리로 작년까지 월 1000만을 훌쩍 넘겼던 매상이 최근에는 반에도 못미치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라며 “이틀간 옷을 구경하려 오는 손님을 한명도 받지 못해 밥이 안넘어간다”고 걱정했다.

미용실 주인 김모씨(36·여)는 “아가씨들이 가게에 나갈 때마다 세탁비와 미장원비, 콜택시비, 사우나비 등 적게는 10만원에서 20만원씩 쓰는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엔 아예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단골도 끊길 지경”이라며 “주변 미장원과 세탁소들들도 대부분 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각종 편법동원·사장이 직접 호객행위 나서=유성의 D단란주점 업주 김모씨(47)는 “손님들이 급감하면서 속칭 `2차`를 나가는 아가씨들에게 주던 여관비마저도 못 주고 있다”면서 “인근 업소끼리 협조해 영수증 나눠끊기라도 해주려 해도 손님들이 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경영난을 호소했다.

사장들도 직접 거리로 나와 호객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C단란주점 사장 안모씨는 “손님이 없어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면서 “2주전부터 직접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털어놨다.

A단란주점 업주 최모씨(53)는 “인근 업소와 협력해 영수증 나눠끊기와 외상 결제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 가게를 유지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 조차도 손님들이 와야 하는데 손님들이 오질 않아 조만간 문닫을 상황"이라며 "건전한 접대도 좋지만 최소한 먹고살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업계와 국세청 이견=이같은 유흥업계의 침체가 경기불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접대비실명제 실시와 접대문화의 변화 추세로 향락문화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은 비정상적 향락 접대문화의 퇴조가 근본적 원인”이라면서 “접대비실명제 실시로 술자리가 경량화되면서 접대문화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고급 향락성 접대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유흥업계 관계자는 “11년째 유흥주점 영업중에 지금처럼 앞이 안보이는 때는 없었다”며 “돈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불경기에 돈이 돌아 소비심리도 살아날 것 아니냐”고 접대비실명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최근 백화점협회에서도 국세청의 조치로 인해 판매에 결정타를 입고 있다는 자료를 내 놓았고,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도

`접대비 실명제 기준 완화`를 연이어 촉구하고 있다.

이에대해 국세청은 "지난 2002년 민간소비지출액 중 접대비 비중이 1.3%, 건당 50만원 이상 접대비는 0.6%에 불과해 민간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면서 접대비 실명제를 현행대로 강행할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있어 유흥업소들의 불황은 한동안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업체 관계자는 "과도한 접대문화는 반드시 고쳐져야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 시급하지만 지나친 내수 위축과 소비심리를 축소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명분은 좋지만 현실과 얼마나 부합할 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禹正植 기자>

유성을 비롯한 대전지역 대다수 룸살롱과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 매출이 반토막나고 일부 업소들은 경영난으로 폐업 일보 직전에 있다.
유성을 비롯한 대전지역 대다수 룸살롱과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 매출이 반토막나고 일부 업소들은 경영난으로 폐업 일보 직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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