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이 8글자는 우리나라 건축을 대표하는 글귀 중 하나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 문장은 기원전 4년 1월, 백제 첫 번째 왕이었던 온조왕 대에 궁궐 모습을 적은 기사 내용이다. 비록 백제 한성기 궁궐 모습에 관한 기사이지만, 이 내용은 백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옛 건축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여러 역사서의 "고구려의 풍속은 음식은 아껴 먹으나 궁실은 잘 만들었다"라는 내용을 통하여 고구려는 검소한 생활 속에서 궁실, 즉 궁궐은 화려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검이불루 화이불치와 상응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지역의 건축미학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세기에서 7세기, 고대의 충남지역은 삼국 중 백제가 존재하였고,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왕도, 즉 왕이 정치를 하고 생활하였던 궁궐이 있던 수도였다. 따라서 충남지역은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당시 백제의 건축문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백제의 건축물이 잔존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우리나라에서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잘 표현하고 있는 전통 건축은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긴 고민없이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충남에서 그 대상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예산의 수덕사 대웅전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건축에 있어 가장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는 10세기 고려후기 건축물로,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찾아 마당에서 올려다 보면, 생각보다 건물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는데, 이는 지붕형태와 건물칸수와 관계가 있다. 수덕사 대웅전의 지붕은 사면 중 앞면과 뒷면에 경사지붕을 구성하는 맞배지붕이다. 맞배지붕은 우진각지붕과 팔작지붕과 다르게 모서리에 추녀와 같이 큰 부재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아한 형태와 더불어 흔히 검소한 지붕형태로 알려져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정면 3칸(14.17m)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정면 5칸(18.75m)과 비교하면, 약 4m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수덕사 대웅전의 옆에 서서 보면 마당에서 본 모습과 다르게 집의 크기에 놀라곤 한다. 3칸 맞배집 일반적으로 가장 작은 규모의 집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수덕사 대웅전은 검소하게 보이고자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의 또 다른 특징은 장식의 아름다움이다.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산봉오리와 봉황장식, 그리고 연꽃잎으로 장식된 향로몸체와 받침부분의 용조각으로 백제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공예품이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공예품을 대변한다고 하면,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의 건축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측면의 배흘림기둥과 항아리형태의 대들보, 구름다리 형태의 우미량, 그리고 연꽃모습으로 장식한 공포와 대공은 모든 건축 부재가 하나의 연꽃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불교의 극락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덕사 대웅전은 지붕과 건축규모에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음을, 건축구조와 장식에서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땀 한땀 장인들의 손으로 1000년을 이어, 단아하고 아름다운 백제와 가장 화려했던 고려의 시대정신을 담은 건축을 예산 수덕사 대웅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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