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가 작년부터 갑자기 우리 곁에 나타났다. 독특한 캐릭터에 통념을 허무는 글들이 그의 주특기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40대에 읽는 쇼펜하우어' 등 20여 종이 출판되고 있어 그 열풍이 거세다.

그는 31세에 발표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주목을 받고 베를린대학에서 강의하게 된다. 하지만 욕망의 근원을 중시하는 그의 학문 성향이 헤겔이 이끄는 이성 중심의 시대 상황과 맞지 않아 좌절한다. 그 후 64세에 산문집인 '소품과 부록'이 인기를 끌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철학도 주목을 받았다. 72세까지 장수했으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실존주의 철학의 맹아(萌芽)로 알려진 그의 글이 우리 사회에 새삼 소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코로나를 힘겹게 견디고 나니 곧 닥친 경제 위기, 영토·종교전쟁처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실에 대한 실망감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반영되었을 듯하다. 그동안 인터넷으로 세상이 평평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성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뒤죽박죽된 현실의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라는 말에서 보듯, 독창적인 수사법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연민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듯하다.

쇼펜하우어 열풍의 중심점에는 늘 욕망으로 울퉁불퉁한 인생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궁극의 질문이 놓여 있다. 그는 표상을 만드는 인식의 틀을 뛰어넘어 의식의 심연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우물에서 물을 긷듯 지혜를 건져 올렸다.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 삶이 힘들더라도 무탈하게 사는 지금이 행복임을 느끼고 싶어 하는지도.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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