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평소 클래식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지 않는 사람이 우연히 얻은 초대권으로 공연장을 찾게 되면,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연주자에게 줄 꽃다발을 준비해야 할지, 고요한 공연장에서는 객석에 앉아서도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맘에 둔 이성의 제안으로 큰맘 먹고 나선 갤러리 데이트에서도 입구에서부터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어떤 순서로 작품을 봐야 하는가. 한 그림 앞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엔 그냥 꽃과 사람을 그린 그림인데 남들은 뭔가 심오한 표정으로 감상하는 것 같다. 난 왜 아무런 감흥이 없지, 난 그림을 볼 줄 모르나?

평범한 우리들은 클래식 공연이나 미술관, 발레나 오페라를 관람하러 가는 일에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많다. 평소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들킬까 봐, 곧 내가 덜 교양 있고 덜 문화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에 대한 걱정이다. 살면서 꽤 자주 생길 그런 순간들을 모두 거북해하거나 피해 가려 하지 말고, 이제부터 겁내지 말고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시작하길 권한다.

EBS 다큐멘터리에서 예술작품감상과 뇌과학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본 적이 있다. 우리의 뇌는 일 하고 있을 때와 쉬고 있을 때의 영역이 있다고 한다. 보통 뇌가 일을 하며 세상을 바라볼 때와 휴식하며 내면을 바라볼 때 각각 개별적으로 작동하는데,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감동할 때만큼은 그 두 가지 영역이 동시에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예술작품 감상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면, 각자의 인생과 내면에 정답이 없는데 작품 감상의 감흥에 정답이 있을까? 격식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떠나 감동하는 나만의 이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누구나 감상적으로 되는 포인트가 있고 저마다 스토리가 다르므로 어린아이의 그림이 맘에 꽂혔다면 그것이 감상이며, 세계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을 다 들어봐도 정작 내 마음을 울리는 연주는 우리 동네 아티스트의 연주일 수도 있다.

자꾸만 두드리자. 첫 악장이 끝나고 아낌없이 보낸 박수가 나만의 솔로무대였던 경험이 있어 봐야, 뒤통수가 뜨거워 봐야, 음악회 에티켓은 그렇게 배우는 거니까. 갑자기 문화생활을 위해 차려입은 어색하고 불편한 옷차림에서 벗어나자. 청바지 운동화에, 예의에 어긋나지만 않게 해서 산책 끝에 들르는 시립미술관, 거기서 만난 미술작품이 나에게 전시 관람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해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안과에 다녀와서는 자기도 눈을 고치는 안과의사가 되겠다던 네 살 조카가 몇 달 만에 원래 꿈이었던 화가가 되겠단다. 아니, 안과 의사는? 의사 싫어요. 환자가 잘못되면 어떡해요. 네 살짜리도 아는가 싶다. 그래, 예술가는 나 때문에 누가 잘못될 수도 있는 직업은 아니지. 잘 못해봐야 아름다움을 좀 덜 전달하겠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직업, 아 얼마나 낭만적인가. 아름다움엔 이유가 없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이유가 똑똑하고 설득력 있을 필요도 없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누군가는 구슬픈 가사에 꽂히고 또 다른 사람은 발랄한 리듬에 또 누군가는 친근한 멜로디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술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모나리자가 그렇게 대작인들 내 맘에 와닿지 않는다면야….

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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