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통해 진단한 한국사회
범죄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답
범죄사회 (정재민 지음 / 창비 / 300쪽 / 1만 8000원)

대낮 번화가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대규모 온라인 살인 예고 등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흉흉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치안강국'이라는 별칭을 가진 대한민국이 어쩌다 '범죄공화국'이 됐을까? 과연 한국이 안전하다고 느낄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은 나날이 급증하고 있지만, 사실 지난 10년간 살인이나 강도, 폭력, 절도 등 범죄는 2012년 193만 건에서 2021년 153만 건으로 점차 줄고 있다. 절대적인 범죄량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최근 범죄들이 '무차별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는 대개 서로 알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모르는 사람에게 전방위적으로 범죄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판사로서 형사재판을 담당했던 이력과 우리 사회 범죄 대책을 마련하는 법무부에서 일한 경험,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과 소통하며 깨닫게 된 바 등을 모두 이 책에 담았다. 그는 판사로 일할 때는 피고인 개개인의 특정 사건을 재판하는 데 몰두했고, 법무부에서 일하게 됐을 때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범죄 발생 추이나 범죄대응 시스템의 설계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또 언론이 떠들썩하게 조명하는 범죄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지혜로 모아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 책은 범죄를 둘러싼 여러 제도를 순차적으로 짚어 나가면서 각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을 반영, 분야별로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각 장이 던지고 있는 첨예하고 논쟁적인 질문들에 저자는 각 제도를 하나하나 해부하듯 펼쳐 논리를 가지고 설명한다.

이 책은 범죄를 둘러싼 제도와 시스템 문제를 원론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을 거론하면서, 각 제도의 맹점과 대중의 오해 등을 파고든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전청조 사기사건 등 이미 많이 알려진 사건부터 저자가 직접 수사나 재판에 관여했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또 실제 사건뿐 아니라 '살인의 추억'이나 '배트맨 비긴즈', '쇼생크 탈출',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논의에 끌어들임으로써 범죄에 대한 시각의 폭을 넓게 확장시킨다.

우리는 이제까지 범죄사건이 일어나면 주로 범죄자 개인의 서사와 심리에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 그렇게 된 데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보도하는 언론과 범죄자의 개인 및 심리 서사에 초점을 맞춘 전문가 집단의 발언 영향이 컸을 것이다. 저자는 범죄를 둘러싼 제도와 기저에 깔린 사회구조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범죄 사건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즐기는 사람들부터 날마다 들려오는 범죄 소식에 불안해하는 사람들까지, 한국사회를 범죄라는 키워드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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