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9일부터 5월 12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서
'가교:이동훈, 이남규, 이인영, 임봉재, 이종수;'
다섯 작가의 시간 한 데 모아 지역미술사 '조명'

대전 화단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지역 미술계에선 1940년대 해방 전후 미술 교사들의 활동을 시발점으로 현대적 기틀을 갖춘 지역 화단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그럼 초기 지역 화단은 어떤 특성을 지녔고, 어떻게 성장했을까. 대전시립미술관은 그 발자취를 좇기 위해 3년 간의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19일부터 5월 12일까지 전시되는 '가교:이동훈, 이남규, 이인영, 임봉재, 이종수;'이다.

'가교:이동훈, 이남규, 이인영, 임봉재, 이종수;'는 대전 미술의 1세대와 1.5세대 중 대전미술사 형성에 주요하게 서술되는 작가 다섯 명의 궤적을 차례대로 따라 제작됐다. 1945년은 대전 화단이 본격적으로 생성되면서 미술활동이 처음 기록된 지점으로, 지역미술사와 한국미술사를 잇는 주요 맥락이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대전 화단 형성과 미술사에 기여한 작가들의 120여 점의 작품을 살펴본다.
 

이동훈, 뜰, 캔버스에 유채, 100.5×72.3, 1950

서양화가 이동훈은 해방 이후 대전사범학교 미술 교사를 역임하며 대전 미술의 초석을 다졌다. 본래 미술이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강습과를 졸업,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작가로서의 기량을 펼쳐나갔다.

이동훈은 대전 정착 후 '목장의 아침'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 특선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은 문화적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대전 화단에 커다란 활력이 됐다. 또 정년에 이르러서도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고, 대전화단과 중앙화단을 연결하는 자양분이 됐다.

대부분 주변 풍경을 그린 그는 목가적 소재를 지루할 만큼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런 무기교(無奇巧)의 미학은 이동훈의 예술세계 본질을 이뤄, 대전 화단에 뚜렷한 궤적을 남겼다.
 

이남규, work, 캔버스에 유채, 133×53.5, 1990

대전 유성에서 출생한 한국 최초의 유리화가(琉璃畵家) 이남규는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68년 오스트리아 수도원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유리화를 배워 파리에서 활동했고, 병고로 귀국했다. 이후 공주사대 교수 등으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 1000여 점의 회화 작품과 성당 및 교회 등 건축물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남겼다.

그는 1960년대 대전에 정착해 지역 예술의 르네상스를 일궈냈고, 한국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소개·발전시켰다. 그의 작품은 찬란한 빛의 색상미 창출과 성스러운 장식적 형상 구성 등에서 현대 가톨릭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적 단계를 중도적 입장에서 견지해온 그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았으나 일찍 작고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승 장욱진과 절친한 후배 이종수와 놀이처럼 서로의 작업에 주고받은 도자와 유화 작업도 최초로 공개된다.
 

이인영, 두여인, 캔버스에 유채, 92×72.3, 1983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인영은 초등교사를 시작으로 중학교와 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1975년 한남대(옛 숭전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부임, 1997년까지 대전 미술계에 기둥 역할을 했다.

자연을 노래한 화가이자 자연미의 탐구자라 불리는 이인영은 탁월한 색채감각과 치밀하고 밀도 높은 필치가 특징이다. 그가 그린 자연과 풍경은 인간영혼의 숨결이 불어 넣어진 동화나 신화, 작가의 이상이 깃든 세계 같기도 하다.

특히 '온화하고 따듯한 색채대비와 미적인 생동감'을 구사해 회색과 보랏빛의 미묘한 조성과 중간색의 색감, 무수한 붓자국을 통해 화면 속 공간감을 나타냈다.
 

임봉재, K양, 캔버스에 유채, 152×85.8, 1974

충청북도 옥천 출신 임봉재는 1957년 대전공고 강사 재직을 시작으로 가수원 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기까지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다. 대전시립미술관의 초대관장이기도 했던 그는 미술관의 건립과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헌신, 대전 미술의 정체성 규명과 발전을 위해 힘썼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인물 중심으로, 선묘가 두드러지는 평면적인 조형어법과 차분하고 무거운 색채가 화면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기반으로 삶과 예술에 대한 고뇌와 애착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군상 시리즈를 비롯한 회화 20점 외에도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공개 드로잉을 선보인다. 아카이브로 분류했던 1955년부터 1970년까지 2000장이 넘는 드로잉 중 임봉재 특유의 조형적 정체성이 담긴 것을 선별해 소개한다.
 

이종수, 잔설의여운, 점토질, 50x56x56, 2005

대전 출생 이종수는 1964년 대전교구 대흥동성당 성모상 좌대를 제작하고, 1969년 대전 목척교 난간설계도를 작성, 고안해 지역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도예가의 길로 들어선 건 1979년부터다. 그는 일찍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몸소 탐구했는데, 흙의 농고나 유약의 성분, 비율, 불의 조절 등을 달리하면서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미적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는 기형과 표면질감을 현대적 조형미로 창출해낸 작품들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대부분 미술관 소장품이 아닌 유족들에게 대여받은 작품이다. 작품으로 내놓은 것보다 깨버린 것이 몇 배는 많아 작업장 한편에 깨진 '도자기산'이 있었다던 그가 뭉개지고 어그러진 것들을 살려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에 있어 자연의 문양을 높이 샀던 이종수의 예술관은 오히려 이 기형적 형태의 도자들에서 전면으로 드러난다.

우리원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대전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뿐 아닌 유족들의 작품 대여와 연구되지 못한 영역까지 공개하면서 미술관의 근원적 성립 조건과 기능을 강조하려고 했다"며 "제목 뒤에 붙는 세미클론(;)은 대전 미술의 연구와 발굴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붙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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