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

2019년 4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으로 촬영한 M87 블랙홀의 사진이 전 세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된 것처럼, 블랙홀 주변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물질들이 내는 빛이 막대한 중력으로 인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나오며 둥근 고리 모양으로 관측된 것이다.

1919년 영국 천문학자 에딩턴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관측팀을 이끌고 개기 일식이 일어나는 아프리카 프린시페 섬으로 향했다. 개기 일식으로 하늘이 어두워지는 순간 태양 주변의 별들을 촬영했고, 평소 밤하늘에서 촬영한 별들의 위치와 비교했다. 이 별들의 위치 차이를 측정함으로써 지구보다 33만 배나 무거운 태양으로 인해 별빛의 진행 방향이 바뀌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최초로 검증된 것이다.

이후 천문학자들은 태양 질량의 65억 배나 되는 극단적인 질량을 갖는 M87 블랙홀에서도 일반 상대성 이론이 성립하는지 검증하기 위해서, 10여 년에 걸쳐 남극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의 전파망원경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지구 크기만 한 가상의 망원경 'EHT'를 구축했다. 그리고 2017년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무려 2500배나 높은 분해능을 갖는 이 거대한 망원경을 이용한 첫 관측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EHT 연구팀은 M87 블랙홀 관측 결과를 발표하고 3년 뒤, 우리 은하 중심에 위치한 궁수자리 A 블랙홀 사진을 공개했다. 태양 질량보다 400만 배 무거운 이 블랙홀 역시 휘어진 시공간을 나타내는 고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로써 100년 전 에딩턴이 관측한 태양 질량에서도, EHT가 관측한 태양 질량의 400만 배, 65억 배에 이르는 극단적인 질량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잘 성립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문학자들이 검증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블랙홀의 존재는 우리 생활과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1974년 또 다른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에베레스트 산보다 무거운 질량을 갖지만, 그 크기는 원자보다 작은 '미니 블랙홀'에 관한 이론을 제시했다. 호킹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호주의 천문학자 오설리번 박사는 미니 블랙홀이 증발하거나 폭발할 때 나오는 약한 전파 신호를 관측하기 위해 잡음을 제거하고 신호가 왜곡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는데, 아쉽게도 미니 블랙홀 관측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오설리번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방법을 무선 통신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던 1980년 당시, 전 세계 주요 통신 회사들이 무선 네트워킹 기술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전파 신호가 사무실 안의 가구나 벽과 같은 표면에 반사돼 신호가 왜곡되고 세기가 감소하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설리번 박사는 빠르고 효율적인 무선 통신을 위해서 큰 데이터를 하나의 전파신호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신호 조각으로 나눠서 병렬로 전송하고, 여러 개로 나눠져 들어오는 전파 신호를 빠르게 재조합시켜 원래 신호로 복원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한 실패한(?) 연구가 오늘날 무선랜의 표준인 와이파이(WiFi)가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지구 크기만 한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어서 블랙홀을 관측한 기술은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전파천문학자 마틴 라일이 개발한 것으로 오늘날 MRI(자기공명영상)나 CT(컴퓨터 단층촬영)와 같은 의료 영상 시스템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천문학 연구를 위해 개발된 다양한 기술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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