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걸 작가
류인걸 작가

뜬금없이 케케묵은 초고(初稿) 공책이 생각나 책장을 뒤지다가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보물 '너랑 나랑'을 발견했다.'너랑 나랑'은 43년 전에 담임했던 아이들 61명이 보내준 글 묶음이다. 그해 필자는 대전의 G학교에서 6학년 4반을 담임했었다. 두어 달 후면 졸업인데 생뚱맞게 신설학교인 큰길 건너 B학교로 옮기게 되어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였다. 도시계획에 따라 구획정리는 되어 있었지만 허허벌판에 3층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는 학교라서 희망하는 선생님이 없으셨다. 궁여지책으로 추첨을 해서 정했는데 필자도 당첨이 된 것이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1월 2일(월) 아침에 B학교로 가시는 다섯 분의 선생님들이 역시 가기 싫은 걸 억지로 가는 1-5학년 아이들 150여 명을 데리고 서러운 이별을 하였다. 6학년은 예외였는데도 6학년을 담임했던 필자는 아이들을 남겨놓고 떠나게 된 것이다. 우산을 쓰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2층의 우리 반 교실에선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고 악머구리떼처럼 선생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차마 뒤돌아볼 수 없어 고개 한번 못 돌리고 교문까지 와서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에게 글짓기를 가르쳐주시어 문학가의 꿈을 키워주신 선생님. 선생님이 안 계신 우리 교실은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어요.<손*선> 지금도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 계시는 것 같다. 그래서 뒤를 쳐다봤다. 선생님은 안 계시고 교실 안은 쓸쓸함만 감돌았다.<손*애> 선생님이 떠나실 때 아이들은 다 울었어요. 하지만 저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기도했어요. 우리들의 마음과 떠나시는 선생님의 마음에 즐거움이 있기를.<정*희>

겨울방학 할 때까지 토요일 오후면 아이들이 B학교로 찾아와 함께 보내곤 했다. 그 아이들이 어느새 50대 중반을 넘기고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얼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모두들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되어 오늘의 기도에서 내일의 희망을 들으며 알차게 익어가길 기원한다. 아름다운 추억은 늘 그리움으로 남는다. 류인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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