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 자유 시간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실천적 대안
'사회 재생산 노동'을 둘러싼 억압적 현실에 일침을 가하다
애프터 워크(헬렌 헤스터,닉 서르닉 지음·박다솜 옮김 / 소소의책 / 296쪽 / 2만 2000원)

인간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일은 어떤 형태로 인간을 속박할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대부분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즉 임금을 받기 위해 스스로 노동에 복종한다. 원하는 것을 먹고, 사고,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일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같은 혁신적 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어서다. 인간은 이제 더 적게 일하고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새로운 탈노동 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의 자유 시간을 잡아먹는 재생산 노동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네 가지 요소를 끄집어낸다. 바로 '기술의 발전', '사회적 기준 강화', '가족 형태의 변화', '주거 공간의 실험'이다.

우리는 앞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노동의 형태를 바꿔나가야 한다. 임금노동이 아니라 미래 노동자를 키워내는 일을 해야 하고, 현재 노동인구를 재생시켜 사회 자체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사회 재생산'이라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재생산 노동, 즉 육아나 돌봄, 잡다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집안일 등은 탈노동 담론에서 '진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오랜 기간 금전적 이득과 구별되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의 노동으로 간주돼 왔다. 그리고 가정을 외부 세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간주하면서 대부분 여성이 주도적으로 그 역할을 맡아왔다.

이 책은 '사회 재생산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가사노동을 둘러싼 여러 담론과 논쟁, 그리고 열정적 투쟁과 획기적인 실험의 역사를 돌아본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극대화하는 실질적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근로시간이나 최하위권의 워라밸 지수, 만성적 과로와 젠더 불평등, 가사노동의 불균형으로 인한 여성의 상대적 박탈감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는 '일이 끝난 뒤' 또 일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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