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사람에게 DNA에서 비롯된 지문과 손금이 있듯이, 도시는 저마다 고유한 무늬를 지닌다. 도로를 연결하는 선형, 블록을 구성하고 그 내부의 필지를 구획하는 방식, 자연을 포용하는 태도들이 모여 일정한 도시의 패턴을 만들고, 이는 특정한 도시를 상징하는 문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 지도에서 몇 번의 클릭으로 위성에서 촬영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원한다면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도시의 무늬는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도시의 무늬는 단지 흥미로운 패턴을 지닌 추상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미학적 차원을 넘어 문화, 정치, 경제 등 그 사회가 작동하는 기제를 드러내곤 한다. 그 복잡한 형상은 오랜 시간동안 마이크로한 스케일에서 제각각 발생한 행위들이 누적된 것이기에, 전체의 모습은 우연히 그리 됐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도시의 무늬 속에는 그 시대, 그 장소가 어떤 자기장아래에서 모습을 갖추어나갔는지 파헤쳐볼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준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는 사방으로 펼쳐진 규칙적인 정방형의 수학적 그리드를 기본 뼈대로 지니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고라라고 알려진 넓은 광장이 놓였다. 아고라는 스토아가 열주를 만들며 주변을 에워싼다. 아고라는 폴리스의 시민들이 모여서 직접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여론 형성과 정치적 발언의 장으로서 기능했다. 이를 둘러싼 아고라는 지붕이 덮인 반외부공간으로 물건을 파는 상점의 역할을 병행했다. 아고라와 스토아의 존재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가 민주정치의 체계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며, 동시에 정치의 공간과 시민 일상의 공간이 동일 시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로마의 도시는 동서와 남북으로 가르는 대로인 데쿠마누스와 카르도가 중심축을 형성한다. 두 대로는 도시를 바깥 세상과 경계 짓는 성벽의 출입구와 연결되는 군사적 의미를 지닌다. 제국주의 시대 영토 확장의 일로를 걷던 로마가 요충지마다 건설했던 요새도시의 모습이다. 로마의 도시를 작동시킨 지배적인 원리는 군사적 효용성이었음을 짐작케한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절대왕정이 생산해낸 베르사유의 도시 패턴은 왕의 자리인 궁전을 중심으로 가로망이 집중되어 도시의 흐름이 한 곳에 집중되도록 하였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권력의 발 아래 두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구체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의 도시들이 지닌 무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까. 보다 진중하고 다각적인 사색과 논의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실타래를 이 짧은 글에서 열 수 있다면 '이중도시' 구조를 짚어보고 싶다.

서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것은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이다. 이는 도시의 무늬에서 즉각적으로 발견된다. 원도심은 유기적으로 뻗어나간 좁은 길이 체계 없이 뒤섞인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 반면, 이와 적당히 이격된 도시의 외곽에는 예외 없이 신도시를 연상시키는 메가블럭들로 채워져 있다. 블록은 작은 필지들로 구획되어 도시의 네트워크를 작은 스케일로 변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형국이다.

우리 도시들은 마치 화전민처럼 원도심을 만들어놓고, 또 다시 새로운 땅에서 도시를 처음부터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첫 번째로 독해 가능한 우리 도시의 무늬가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도시의 무늬가 지닌 이 '이중도시'의 발생원인과 경과를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구성해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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