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CT 대학원때 접한 현미경 이미지에 매료
사진과 접목한 작품으로 논문, 저명한 저널에 등재

2024 예술신인류

사진작가 지호준

지호준 作.  Before Sunset Cinema, 140cmx90cm, Pigment print, 2018  밝은 사각형은 현미경으로 본 오래된 종이 이미지와 자연 풍경을 중첩해 얻은 부분이다. 지호준 작가 제공

사진은 전 과정이 과학이다. 사진기라는 기계가 사용되고, 현상·인화를 거쳐 나온 결과물은 화학의 영역이다. 컴퓨터는 사진 장르를 무한정 확장시켰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세계를 벗어나, 작아서 미처 볼 수 없는 곳을 새롭게 보게한 시도가 있다. 사진 작가 지호준은 현미경을 가지고 육안으로는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가 현미경 작업을 하는 대전 유성구 테크노밸리 내 한 연구소에서 만났다.

 

-현미경으로 본 세계를 예술 작품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KAIST CT(문화과학기술) 대학원을 왔습니다, 첫 연구실이 정재승 교수님 랩이었는데, 우연히 연구실에서 키우고 있던 강아지 똥을 현미경으로 보았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달라 신기했고, 정선의 금강전도가 연상됐습니다. 곧 작품으로 연결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최근에는 어떤 작품을 하고 있나요.

"동전을 가지고 작품 준비 중입니다. 동전은 흔한 소재이지만 인물, 건축물 등 상징적인 요소가 있고, 극대화 시켰을 때 눈으로 보기 힘든 녹슨 부분과 스크래치 등을 포함해 기념비적인 대상으로 관점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동전으로 작업을 했지만 광학 현미경을 이용한 이미지였고, 스토리 텔링에 주안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나노 수준까지 볼 수 있는 전자 현미경 이미지를 활용해 관점의 변화와 심도 있는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오래된 종이를 전자 현미경으로 본 이미지. 퇴적물, 나무, 꽃 등 자연의 일부라 해도 손색 없는 대상들을 볼 수 있다. 지호준 작가 제공

-전자 현미경이 기존 광학 현미경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동전 하나를 찍을 때 광학 현미경은 1000배 정도 확대할 수 있었다면 전자 현미경은 1만배까지도 가능합니다. 타일링(작은 부분을 붙여 전체를 만드는 것)을 거치면 30미터 길이도 나옵니다. 미세한 스크래치도 볼 수 있고, 이미지 변환도 여러 단계로 할 수 있습니다. 대상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어 사실상 육안의 한계를 넘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기술 발달에 따라 작품이 진화하네요.

"이전에는 타일링을 일일이 손으로 했어야 했지만 전자현미경은 자동으로 가능합니다. 편해졌다 해도 작업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대상 하나를 확대해, 5000장 이상 조각으로 이어주기 때문에 동전 하나 걸어놓으면 8시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기계가 예민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하고, 원하지 않은 이미지가 나왔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만큼의 시간을 다시 걸어놓아야 합니다."

 

-현미경이 보여주는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눈으로 어떠한 대상을 보았을 때, 현미경으로 본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별 것 아닌 종이 한 장도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완전한 자연입니다. 그 속에는 나무가 있고, 열매가 매달려 있고, 퇴적물 쌓여 있습니다. 쓰레기로 취급되는 종이 한 장에는 우리 눈으로는 안 보이는 또 다른 자연이 있는 셈이죠."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세상에 빠지면 자칫 부작용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현미경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 못 견디는 증세가 생깁니다.(웃음) 심지어 안주로 놓아 둔 마른오징어도 현미경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 표면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세포 같은 것들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현미경 이미지는 예상치 못해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현미경을 활용하기 이전에는 무슨 작업을 했나요.

"인물 사진을 위주로 작품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한국의 예술가 시리즈를 기획해 유명 예술가분들을 만났습니다. 한예종에서 홀로그램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공대와 교류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카이스트 CT대학원은 제가 바라던 다양한 과학적 환경이 갖춰져 있어서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시기별로 집중하는 주제가 있나요.

"동전으로 돌아온 지 약 1년이 됩니다. 그 전 3년 동안 논문을 쓰는 데 집중했습니다. 논문에 집중한 3년은 10년간의 작가 생활을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명한 해외 저널에 인용이 됐고 제 작품이 표지로도 사용됐습니다."

 

지 작가의 논문 '미시세계를 접목시킨 뉴미디어 아트'가  저명한 디지털 미디어 저널인 'Digital Creativity' 2021년 6월 등재됐다. 지 작가의 작품이 표지로 올랐다

-KAIST 도서관에 기증작이 전시돼 있습니다.

"2022년 작품 5점을 KAIST에 기증했습니다. KAIST CT대학원을 나온 뒤 중앙대 박사 학위를 받았고, KAIST 산업디자인과에서 5년간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만나면 세상이 빨리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꾸준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이 됩니다."

Big Bang, 120cm x 120cm, 피그먼트 프린트와 유리 위의 UV인쇄, 2024 
Big Bang, 120cm x 120cm, 피그먼트 프린트와 유리 위의 UV인쇄, 2024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정의한 상태에서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그 정의는 틀릴 수도 있습니다. 현미경 이미지로는 꼭 나무처럼 생겼는데(나노 트리) 실제로는 화학물입니다. 우리는 이미 형태만 보고 나무라고 단정했는데, 실제로는 아닐 수 있는 거죠. 종이도 그렇습니다. (나무에서 유래한)종이도, 나무와 같이 탄소 성분이 가장 많은데, 성분이 어떤 방식으로 배합돼 있느냐에 따라 형상도 달라집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호준 사진작가 
지호준 작가는 "현미경으로 대상을 보면 눈으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보입니다. 이미 정해놓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영태 기자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나요.

"이미지로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입니다. 한 가지 주제가 주목받으면 평생 같은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항상 새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지호준 작가는

-1980년 서울생

-상명대 영상학부 학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석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겸직교수(현)

-부천대, 아주대 겸임교수 역임

-제16회 Art&Science 첨단영상제 최우수상, 2010사진 오늘의 작가상(사진예술), 제11회 한국광고사진대전( KAPA) 대상 등 수상 

-신갤러리(뉴욕), 대전중구문화원, 진화랑, 박영덕 화랑 등에서 개인전

-작품 소장처: 삼동그룹, 주터키 대사관, 서울시립미술관, 미국 911메모리얼 센터, 한진해운본사 등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