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선임기자
김재근 선임기자

인감증명은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다. 대한민국을 강점한 일제는 1914년 '인감증명규칙'을 도입했다. 모든 서류에 인장(도장)을 찍어 본인임을 증명하게 함으로써 일본인들의 경제활동을 보호하고 조선인을 통제하는 게 목적이었다. 조선인의 인감도장이 찍힌 서류와 행정을 통하여 조선을 일제의 강압체제에 묶어두려 한 것이다.

일제는 '인판업취체규칙'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취체는 단속 또는 통제라는 뜻이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도장을 제작, 판매하는 인장업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도장이란 게 별로 쓰이지 않았다. 왕실에는 국새와 어보, 관청에서 물품에 도장을 찍어주는 관인이 있는 정도였다. 개인이 쓰는 사인(私印)이 있었지만 그림이나 글씨에 낙관으로 사용했다. 벼슬아치나 사대부, 상민은 수결(手決)을 사용했다. 수결은 이름이나 관직 뒤에 적어놓은 독특한 기호나 부호로, 오늘날의 사인(Sign)과 같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애써 인감증명제도를 유지해왔다. 1961년에는 일제가 만든 인감증명규칙을 폐지하는 대신 인감증명법을 제정했고, 국가기술자격법에 인장공예기능사 자격시험까지 뒀다.

110년의 역사를 가진 인감증명제도가 크게 축소된다. 정부가 행정서비스 개혁의 일환으로 인감증명을 디지털인감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내년 6월까지 인감증명을 요구하는 2608개 사무 중 82%인 2145개에서 인감증명서를 없앤다고 한다. 지난해 발급된 인감증명서가 2984만 통이나 됐다. 엄청난 시간과 경비가 낭비됐음을 알 수 있다.

인감증명은 진작 혁파됐어야 할 낡은 제도이다. 사실 인감은 조선시대 서명인 수결만도 못하다. 인감증명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대만·일본 3개국이다. 인감의 종주국인 일본과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대만이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세계 최고 디지털행정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인감제도를 못 버린 것은 아이러니다.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관습적이고 타성적인 시스템에 안주해온 탓이다. 21세기 정보화시대, 이미 안전하고 다양한 디지털 인증제도가 만들어졌다. 인감증명서를 줄일 게 아니라 과감하게 모두 폐지하는 쪽으로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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