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선임기자
김재근 선임기자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됐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해를 가한다. 정적이나 라이벌, 심지어 가족과 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죽이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록된 정치 테러는 정몽주 피살이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는 이성계 세력에 반대하다 살해당한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수하의 철퇴를 맞고 비명에 간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폭력적 수단으로 정적을 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근현대에도 정치 테러가 줄을 이었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 설산 장덕수가 피살됐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납치돼 동해상에 수장될 뻔했다. 박정희는 테러로 아내를 잃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50대 남자가 휘두른 커터 칼에 얼굴에 자상을 입었고, 2022년에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선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중 69세 남자가 휘두른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해 7월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통일교를 증오하는 남성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엊그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60대 남성에게 피습당했다. 목 부위를 찔렸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세상이 삭막하고 살벌하고, 무서워졌다. 자신과 뜻이 다르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괴롭히고 공격한다. 특히 정치적 이념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양극화 극단화가 심해지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부류도 생겨났다.

테러는 인간성을 저버린 반인륜적 행위이다. 우파에 의한 백색테러이든 좌파에 의한 레드테러이든 범죄일 뿐이다. 어떠한 종교나 민족적 이념적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도 테러는 테러일 뿐이다. 피해자가 영문도 모른 채 피를 흘리고 죽기도 하는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정치는 소통과 대화와 조정과 타협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북한이나 중국처럼 한 사람의 정치인, 하나의 정당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생각과 처지와 가치관이 다른, 다양한 사람이 싫든 좋든 함께 탄 채 굴러가는 수레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숙명이다. 짝이 없는 외짝 수레바퀴의 마차는 곧 넘어지고 만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