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선임기자
김재근 선임기자

아파트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산물이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면서 주택난이 빚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권을 비롯 전국 곳곳에 아파트가 건설됐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아파트 붐은 80년대말 200만호 주택건설계획으로 불이 붙었다. 아파트가 서민의 꿈이 됐고, 수 많은 건설사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선분양이다. 도시지역의 주택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큰 자본 없이도 단기간에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집 없는 소비자들은 모델하우스 한번 보고 청약을 한 뒤 돈을 빌려 집값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선분양은 철저하게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를 위한 제도이다. 공급자는 소액의 자금을 기반으로 브리지론과 PF 등을 통해 돈을 조달하고, 소비자의 계약·중도·잔금으로 집을 짓는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금융 비용도 모두 소비자가 부담한다.

선분양의 단점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거의 일방적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하자나 부실이 발생하면 소비자가 감당해야 한다. 2021년 공동주택 하자·분쟁조정위에 접수된 사건이 7686건이나 됐다. 사업자의 부도로 전재산을 날리는 경우도 일어난다.

요즘 아파트 시장에 후분양이 등장하고 있다. 분양시장이 위축되고 부실시공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아예 60-80% 가량 지은 뒤 분양하는 흐름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자금력이 있고, 분양에 자신이 있는 일부 사업자들에게 한정된 얘기다.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 일본 등은 후분양이 많다. 제도적으로 선분양을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상당 부분 집을 지은 뒤 분양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일부에서 선분양을 하지만 중도금을 내게 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처럼 선분양이 이뤄지는 곳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같은 개도국들이다. 주택은 부족한데 후분양을 하기에는 건설사의 자금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 후분양을 확대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정부도 2004년부터 공공부문 후분양 시범 실시를 추진한 바 있다. 주택공급시장의 과열과 난립을 막고, 소비자들이 마음 놓고 집을 살 수 있도록 후분양제를 적극 추진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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